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 이모(28)씨는 24일 상황을 떠올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날 일어난 KT 아현지사 화재로 인한 통신 마비로 주변 병원들은 ‘1980년대 시절’로 되돌아갔다. 화재 지점에서 2.8㎞ 떨어진 신촌 세브란스병원은 KT 통신망을 쓰는 의료진과 직원용 콜폰이 먹통이 됐다. 이 때문에 이날 세브란스병원엔 “○○○ 선생님 병동으로 와주세요”라는 안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한 의사는 “무슨 1980년대 병원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병원들, KT 화재 아찔했던 주말
콜폰도 전산차트도 한때 먹통
방송으로 “○○○ 선생님 와주세요”
병원 내 편의점과 식당도 결제 시스템이 마비됐다. 세브란스병원 주차장도 카드결제가 안돼, 나가는 차들 중 현금이 있는 차량은 받고, 현금이 없는 차량은 그냥 출차시켰다고 병원 측은 전했다. 한 직원은 “주차 비용 손실만 해도 꽤 될 것”이라고 전했다. 병원 관계자는 “다행히 주말이었고 오전 외래가 끝난 시간부터 통신이 끊겨 그나마 차량이 적었다”며 “다들 기사를 보고 상황을 아셔서 병원 외부 일로 인한 불편이라 많이 이해해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화재 지점에서 7.7㎞ 떨어진 순천향대 서울병원도 상황이 심각했다. 이곳에선 24일 통신장애가 발생한 초기 2시간 정도 환자 진료기록이나 촬영 자료가 담긴 전산 차트 시스템이 먹통이 돼 응급실을 폐쇄하기도 했다. 온종일 방송이 울려 퍼진 것은 신촌 세브란스병원과 마찬가지였다.
통신 장애는 25일까지 이어졌다. 신촌 세브란스병원은 25일 정오쯤 KT 이동기지국 차량이 도착하면서 통신이 복구됐다. 순천향대 서울병원도 25일 오후부터는 통신이 재개됐다. 두 병원 모두 주말 동안 “전화예약·변경이 어렵다”고 안내했지만 26일 오전에는 전화예약 시스템도 정상 복구됐다. 우려됐던 평일 ‘예약 대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미종 순천향대 서울병원 홍보팀장은 “KT 통신망이 흔들리는 것으로 병원 진료까지 안 되는 상황이 너무 급작스러웠고, 의료진도 당황스러워했다”며 “의료 기술과 기기도 중요하지만 통신망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게 한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도 “내부망 오류에 대한 대비는 돼 있었는데 외부망이 이렇게 완전히 끊기는 상황은 불가항력이었다”며 “앞으로 이런 부분도 보강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