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원 과학&미래팀 기자
해방은 구속이 있어야 성립한다. 장인순 원자력연 고문은 이임식 전날인 19일 중앙일보와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구속’의 정체에 대해 설명했다. 이른바 ‘자진사퇴 압력’이 핵심이었다. 장 고문은 “지난 5월부터 정부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통해 하 원장에게 사퇴 압력을 가했다”며 “하 원장이 이를 거부하자 지난 6월 반핵단체 출신의 상임감사를 보내 연구과제를 지연시켰다”고 증언했다. 정부가 보냈다는 인사는 반핵부산시민대책위원회 사무처장 출신인 서토덕 상임감사다.
지난 20일 사퇴한 하재주 전 한국원자력연구원장이 이임사를 읽고 있다. [사진 한국원자력연구원]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사퇴 압력설을 부인했다. 그러면서도 “그동안 아무 문제도 해결된 게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문제는 1997년부터 2008년까지 원자력연이 공릉동 연구용 원자로를 해체하면서 저지른 방사선 오염 금속 무단 유출 및 폐기 사건 등이다. 앞뒤가 안 맞는 해명을 한 것이다. 과기정통부는 이날 본지 보도에 대해 해명 또는 설명자료조차 내지 못했다.
결국 장 고문의 말대로, 하 원장의 사퇴에는 그가 전 정권에 임명된 인사라는 점과 ‘탈원전’이라는 이념적 배경이 작용했다는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가 부임 직후부터 자진신고제를 도입하는 등 연구원의 과오에 대해 결자해지(結者解之)하려 한 전문가임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하 원장이 책임질 일이 있다면 공식 절차를 거쳐 발표하면 될 일이다. 그가 정치적 이유로 자리를 떠나는 바람에 원자력연이 앞으로 나아갈 기회를 놓쳤다. 그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원자력기구 국장 등을 역임하며 전문성으로 원장이 됐듯, 과학은 오로지 전문성이 지배해야 한다. 과학에 대한 정치적 재단은 오히려 원자력을 더욱 위험한 에너지로 바꾼다.
허정원 과학&미래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