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단은 기자회견을 마치고 국회 안으로 이동했다. 오후 3시 예정된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와 면담하기 위해서다. 면담 장소인 의원회관으로 향하던 이들은 갑자기 국회 본관으로 향해 현수막을 펼치며 기습 시위를 했다. 현수막엔 ‘재벌을 위한 국회인가 1100만 비정규직을 위한 국회인가. 파견법·기간제법 폐기, 노동법 2조 개정’이라고 적혀 있었다.
전날엔 “파견법 폐기” 대검 농성
최저임금, 근로시간 단축 문제
“정부에 더 밀리면 끝장” 위기감
계파 주도권 다툼도 강경론 원인
이들의 국회 기습 집회는 1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단의 ‘비정규직 그만 쓰개’ 공동행동의 일환이다. 이들은 전태일 열사 48주기인 13일부터 5일간 청와대, 국회, 대법원, 대검찰청, 정부종합청사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제기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날 오전엔 청와대 앞에선 민주노총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탄력근로제 기간이 확대되면 노조가 없는 곳에서는 노동자들이 더 힘들어진다.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 논의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노총과 민주노총 산하 노조의 잇따른 점거 농성·시위는 “더는 정부에 밀리면 끝장”이라는 위기감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민주노총은 최근 석 달간 서울고용노동청, 대구고용노동청장실, 김천시장실, 한국잡월드 등에서도 점거 농성을 벌였다.
현 정부가 노동존중을 표방하면서 민주노총은 그 어느 정부보다 대접을 받았다. 요구 사항은 정책 현안 테이블에 오르기 일쑤였다. 그러나 경제 상황이 녹록하지 않으면서 민주노총의 요구를 정책으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한계에 부닥쳤다. 시장에서 먹히지 않았다. 최저임금을 올리자 고용 사정이 나빠졌고, 결국 시급 1만원 속도조절론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무턱대고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올렸다가 대기업 근로자까지 최저임금 대상자가 되는 기현상이 나타나자 최저임금의 산입범위에 상여금을 산입했다. 이런 와중에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후속 조치로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를 정부와 정치권이 모색하고 있다. 민주노총으로 파도가 줄을 지어 몰아치는 형국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주노총 입장에선 ‘이제 정부와 밀월관계가 끝났다’고 판단한 듯하다”며 “더 밀리면 민주노총의 세가 줄어들 것을 우려해 점거나 농성과 같은 노이즈 마케팅으로 세 과시형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는 양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의 이런 행동은 21일로 예정된 총파업이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총파업이 동력을 끌어모으지 못하고 흐지부지 끝나면 민주노총의 세력 약화가 급속히 진행될 수 있고, 자칫하면 변방으로 소외될 수 있다. 그래서 점거 농성 같은 자극적인 이벤트로 총파업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는 게 노동계 안팎의 분석이다. 일각에선 민주노총 내부의 계파별 주도권 다툼도 강경투쟁의 한 요인이란 분석이 나온다.
김기찬·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