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거기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서훈 국정원장, 조명균 통일·정경두 국방장관이 그를 따라갔다. 그런 풍광은 단번에 각인된다. 그 속에 권력 서열이 매겨진 듯하기 때문이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의 지적은 실감 난다. “깜짝 놀랐다. 대통령의 유럽 순방 동안에 비서실장이 국정원장, 국방·통일부 장관을 부하 다루듯 대동하고 전방을 시찰했다.”
비서실장의 DMZ 인솔 장면
권력 서열이 매겨진 듯해
문 대통령의 권력 운영에 부담
손학규, ‘제2의 차지철이냐’
임종석 차기 대망론도 확산
‘2선의 절제’가 처신의 지혜
그 모습은 정권 내부에 미묘한 파장을 던진다. 그것은 문재인 정권의 권력 관리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손학규는 “국민은 또 하나의 차지철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했다. 차지철은 유신 말기 권력 집중·남용의 어두운 기억이다.
청와대의 해명은 이어진다. 김의겸 대변인은 “(임 실장의 5사단 DMZ 방문은) 남북 공동선언 이행추진위원장으로 상황을 점검하기 위한 것이다. ‘자기 정치’라는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핵심 경력은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다. 그는 이렇게 회고한다. “비서실장이 되면 대통령 부재 중에 청와대를 지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 따라나서기는커녕 비상근무를 하느라 더 고달팠다.”(자서전 『문재인의 운명』) 비상근무의 출발은 청와대에서의 ‘정위치’다. 임종석의 처신 논란은 그런 기본에 충실하지 않아서다.
유해·유품 작업의 수훈자들은 ‘국방부 유해발굴 감식단(MAKRI)’ 병사들이다. 병사들의 땅파기는 정밀하다. 그들은 65년 전에 산화한 삶과 첫 대면한다. 그 때문에 동영상의 주연은 병사들이어야 했다. 다수 국민은 발견 순간의 비감 어린 감상을 듣고 싶다. 그래야 가슴이 저려 온다. 전쟁사의 비장미(悲壯美)가 살아난다.
그 현장은 임종석의 주도 무대가 아니다. 비서실장이건, 이행추진위원장이건 마찬가지다. 그는 마이크를 병사들에게 양보했어야 했다. 그는 이렇게 마무리한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의 유해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일은 국가의 의무입니다.” 그것은 표절처럼 들린다. 유해발굴단의 이런 구호가 간결·강렬해서다. “그들을 조국의 품으로.”
임종석 실장의 전성기다. 29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그를 만나러 왔다. 둘의 청와대 만남은 미국 측 요청이다. 비건의 면담 우선 상대는 임종석이다. 정의용 안보실장과의 면담은 나중이다. ‘정의용 패싱’은 임종석의 함박웃음과 대비된다.
한·미 동맹의 현재 특징은 불협화음이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 교류 기세는 밀어붙이기다.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망은 촘촘해지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 자세는 교묘해진다. 비건은 한국 측에 속도조절을 요구한 듯하다. 미국은 남북관계의 실무 사령탑을 임종석으로 파악한다. 대북·외교안보 정책의 주도권은 청와대에 있다.
청와대 참모진의 주력은 전대협 출신들이다. 그들 586세대의 이념적 연대의식은 유별나다. 그 바탕에는 ‘우리민족끼리’가 있다. 임종석은 그런 참모진의 중심이다. 그의 업무 이미지는 질주다. 그 움직임이 요란할수록 정쟁을 유도한다. ‘임종석 차기 대망론’은 확산된다. 그 방식이 파격일수록 여권 내부는 복잡해진다. 권력의 속성은 질투와 의심이다.
대통령 비서실장은 국정의 쿼터백이다. 그 손에서 정책과 인사가 조정·분산된다. 비서실장의 덕목은 ‘2선의 절제’다. 그 위상과 존재감은 은밀해야 한다. 그런 자세가 대통령 보좌를 세련되게 해준다. 그것은 권력 운영의 숱한 시행착오 속에 나온 지혜와 경륜이다.
박보균 칼럼니스트·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