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뉴스통신(VNA) 등 현지언론은 2일 “므어이 전 서기장이 1일 오후 11시쯤 하노이의 군중앙병원에서 별세했다”고 전했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 자국내 독립운동
‘도 므어이’는 ‘열 번 승리했다’는 뜻
1991년~1997년 공산당 서기장 재임
한·미·중과 수교 통한 외자유치 이끌어
도이머이는 북한의 경제발전 모델로도 언급된다. 지난 7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해 베트남처럼 기적과 같은 경제 번영을 이뤄라”라고 말했다.
1917년 하노이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므어이 전 서기장은 프랑스 식민지 시절인 36년 ‘인민전선운동’(현 공산당)에 뛰어들면서 자국 내에서 독립운동에 힘쓴 ‘혁명 1세대’다. 41년엔 프랑스군에 체포돼 10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런 투쟁 덕에 ‘응우옌 주이 꽁’이라는 본명 대신 ‘열 번 탈출했다’, ‘열 번 승리했다’는 뜻의 ‘도 므어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45년 베트남 독립 후 상무부 장관, 건설부 장관, 부총리, 총리를 거친 후 공산당 서기장이 됐다.
므어이 전 서기장은 92년 한국-베트남 수교에 큰 역할을 했으며 95년 한국을 방문했다. 96년엔 베트남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바 있다. 경제정책 수립 과정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상을 연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지아 기자 kim.ji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