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 한국 자동차 산업 <상>
자율주행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내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일대에서 완전 자율주행 서비스를 시험하고, 일본은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무인 자율주행 택시를 선보일 예정이다. 중국도 광둥성에 자율주행차 기지를 설립한다.
스웨덴, 규제 확 풀어 미래차 지원
자율주행 전기버스 노선 생겨
한국, 도로 시험운행도 겹겹 규제
기술수준 1년 새 10위서 15위로
이러니 국내 완성차 자율주행 기술력은 주요 글로벌 완성차 제조사 중 최하위권일 수밖에 없다. 자율주행 기술 전문 조사기관인 미국 내비건트리서치가 작성한 ‘2018년 자율주행 리더보드 리포트’에 따르면 현대차그룹 기술력은 19개 조사 대상 기업 중 15위(2018년)였다. 지난해 10위에서 다섯 계단이나 떨어졌다. 특히 정보통신기술(ICT)·카셰어링 기업을 제외한 14개 완성차 제조사 중에선 13위였다. 지난해 자율주행 기술 능력이 현대차그룹에 뒤진다는 평가(13위)를 받던 도요타는 12위로, 18위였던 중국 베이징자동차는 14위다.
홍정표 한양대 미래자동차공학과 교수는 “기술 측면에서 하이브리드카·전기차 분야는 한국이 글로벌 선도 기술과 비교해 크게 뒤질 것이 없다”며 “하지만 국가적 지원이 필요한 인프라(충전소)·가격경쟁력(보조금) 정책이 한발 늦는 바람에 세계시장 점유율도 낮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하이브리드카, 중국은 전기차에 국가적 투자
또 포드는 사이프스·채리엇·아르고AI를 인수했고, 다임러는 플링스·쇼퍼프리붸를, 델파이는 누토노미를 인수했다.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가 인수합병(M&A)을 통해 기술력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M&A에 소극적인 한국 완성차 제조사와 극명히 대조된다. 지난해 한국 자동차산업 연간 M&A 거래액(25억 달러)은 중국(290억 달러)·미국(254억 달러) 등 경쟁국의 10% 수준에도 못 미쳤다.
연구개발(R&D) 투자도 부족하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162개 자동차 R&D 투자 기업 중 한국 기업(12개·7.4%)은 중국 기업(34개·21%)의 3분의 1 수준이다. 연구개발비·연구다양성·연구집약도 등 질적인 지표에서도 한국은 모두 중국보다 뒤떨어졌다.
정부의 근시안적 정책도 문제다. 미래차 기술 변화·속도는 각종 불확실성으로 개별 기업이 대응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 때문에 각국은 산업 육성 측면을 고려해 미래차 정책을 추진한다.
예컨대 가솔린차 산업구조를 기반으로 한 미국 정부는 가솔린차에 유리한 환경규제를 도입하고, 경유차 경쟁력이 뛰어난 유럽연합(EU)은 이산화탄소(CO2) 규제를 강화해 경유차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다. 하이브리드 기술을 선도하는 일본은 하이브리드카에 인센티브를 집중하고, 내연기관 기술력이 낮은 중국은 전기차 육성 정책에 드라이브를 거는 식이다.
이에 비해 한국 정부는 전기차 등 특정 분야에 R&D 자금을 집중 투자하면서 기초원천기술·핵심기술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 배충식 KAIST 기계공학과 교수는 “내연기관 기술력 저하는 판매 감소→미래차 투자 감소→미래차 경쟁력 약화의 악순환 고리를 형성한다”며 “내연기관 기술 경쟁력 확보라는 ‘대전제’ 아래 미래차 기술을 육성하는 ‘투 트랙’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예테보리=문희철 기자, 포이어바흐=김도년 기자 report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