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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장 18배 BMW 전기차 공장, 직원은 50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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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독일 라이프치히에 있는 BMW 전기차 차체 생산 공장 내부. 축구장 18개 크기(18만4000㎡)의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고작 50여명 뿐이다. 이곳에선 160대의 차체 조립 핵심 업무를 담당한다. [사진 BMW]

독일 라이프치히에 있는 BMW 전기차 차체 생산 공장 내부. 축구장 18개 크기(18만4000㎡)의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고작 50여명 뿐이다. 이곳에선 160대의 차체 조립 핵심 업무를 담당한다. [사진 BMW]

초대형 공장에 50명 근무…로봇이 '사수' 사람은 '조수' 

#지난 7월18일(현지시간) 방문한 독일 라이프치히의 BMW 전기차 차체(車體) 제작 공장. 이곳에선 'i시리즈(i3, i8)' 제품에 쓰이는 탄소섬유(철보다 가볍고 강도가 센 플라스틱 소재) 차체를 매일 300개씩 조립한다. 축구장 18개 크기(18만4000㎡)의 대규모 작업 공간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고작 50여명. 칸막이로 나뉜 작업 공간에 배치된 로봇 2대가 차체 부품에 분주히 접착제를 바른 뒤 다음 제작 라인으로 옮기면, 사방에 설치된 4대의 로봇이 이를 조립해 차체를 완성한다. 사람은 분주히 지게차로 조립에 필요한 부품을 실어나를 뿐이다. 로봇이 사수, 사람이 조수인 셈이다.
이 공장에선 160대의 로봇이 전기를 소비하며 전기차를 만들고 있지만, 에너지 비용은 일반 내연기관 모델 생산 공장의 절반밖에 들지 않는다. 요한 뮐러 BMW 라이프치히 공장 홍보 담당은 "유칼립투스·올리브 등 천연 재료로 만든 공장 지붕은 에어컨 없이도 시원한 실내 공기를 유지한다"며 "전기차 생산에 쓰는 전력의 90% 가까이 공장 주변에 설치한 풍력 발전기 4기에서 얻기 때문에 에너지 비용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독일 라이프치히에 있는 BMW 전기차 생산 공장 전경. 이곳은 공정에 필요한 전기 에너지의 90% 이상을 공장 주변에 설치한 4기의 풍력 발전기를 통해 얻는다. [사진 BMW]

독일 라이프치히에 있는 BMW 전기차 생산 공장 전경. 이곳은 공정에 필요한 전기 에너지의 90% 이상을 공장 주변에 설치한 4기의 풍력 발전기를 통해 얻는다. [사진 BM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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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료 자동 주문하는 '슈퍼지능' 선반, 생산에 적용 

#같은 달 16일(현지시간)에는 독일 남부 슈투트가르트 인근 포이어바흐에 위치한 보쉬의 차 부품 생산 공장을 찾았다. 이곳 현장 작업자들은 스프링이나 철제 고리 등 제품 제작용 원재료를 보관하는 선반이 '슈퍼 지능'을 가졌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선반마다 무선주파수인식(RFID) 칩을 붙여 제작할 제품에 필요한 원재료가 담긴 선반엔 자동으로 파란불이 들어온다. 불필요한 재료가 담기면 빨간색 경고등이 들어오고, 재료가 부족해지면 기계가 알아서 주문해 놓는다. 케빈 크리쳐 보쉬 물류 담당 선임 매니저는 "이 지능형 선반은 올여름 이후 첫 시험운행에 들어갔다"며 "실제 운행에 들어가면 원재료 부족에 따라 지체되는 작업 시간을 줄여 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2015년 폴크스바겐의 '디젤 게이트' 등 잇따른 악재에도 독일 자동차 산업 경쟁력이 날로 향상되고 있다. 독일자동차산업협회(VDA)가 집계한 지난해 독일 자동차 산업의 총 매출액은 4228억 유로(544조8200억원)로 5년 전인 2012년 3550억 유로(457조4100억원) 수준에서 꾸준히 증가 추세다. 지난해 전 세계 자동차 생산량 순위도 변동 없이 중국과 미국·일본에 이어 4위를 꾸준히 지켰다.

독일 자동차 산업 경쟁력 비결 #스마트 공장이 생산성 향상 주도 #노사협력 강화, 노동 경쟁력 키워 #보쉬 공장 선반, 알아서 부품 주문 #벤츠는 실업고 졸업생 인재 양성

중앙일보는 지난 7월16일부터 18일까지 사흘간 독일 차 산업 경쟁력의 밑바탕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현장을 직접 찾았다. 현지 취재 내용을 종합하면 독일 차 산업 경쟁력은 'S·M·A·R·T'로 요약됐다. 공장 자동화(Smart Factory) 도입으로 생산 효율성 향상을 시도하면서 인재를 키우고(Man Power), 노사 협력(Association)을 강화해 노동 경쟁력을 높였다. 여기에 대기업은 물론 강소기업의 연구·개발(Research & development), 기술(Technology) 투자를 강화해 다른 나라가 넘볼 수 없는 '초격차'를 만들어 나가는 방식이다.

독일판 4차 산업혁명 '인더스트리 4.0' 깊숙이 들어와 

2013년부터 독일 산업계를 중심으로 시작된 '인더스트리 4.0'은 자동차 생산 현장에 깊숙하게 파고들고 있다. 세계자동차조사월보(2017)에 따르면 폴크스바겐과 BMW의 2021년 자동차 생산 능력은 2016년 대비 각각 20.1%, 16.3% 증가할 것으로 관측됐다. 반면 GM이 1.8% 늘고 도요타가 1.0%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독일 대표 업체들의 생산 능력이 강화되는 밑바탕에는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인 공장 자동화가 한몫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레고르  쾨르켈 보쉬 파워트래인솔루션부 팀장은 "보쉬는 2016년 1월 스마트 팩토리 전환 프로젝트인 'i 4.0'을 시작한 이후 전반적인 생산 시간을 10% 줄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기업마다 운영하는 전문 인력 양성 프로그램도 노동 경쟁력을 키운 핵심 요인이다. 가령 메르세데스-벤츠는 실업계 고등학교 졸업생들이 3년간 급여를 받으면서 기술과 이론 교육 모두를 받을 수 있는 '아우스빌둥'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보쉬 역시 비숙련 노동자들이 자동화 시스템에 숙련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 개발에 지난 5년간 10억 유로(1조3100억원)를 투자하기도 했다.

투쟁보다 고통 분담 택하는 협력적 노사 관계도 경쟁력 

무엇보다 독일 자동차 산업 경쟁력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위기 때마다 극한투쟁보다는 고통 분담을 선택하는 협력적인 노사 관계다. 폴크스바겐의 경우 1990년 초 회사가 경영 위기에 빠지자 노사는 2년간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는 대신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임금을 16% 깎는 데 합의했다. 또 자동화로 사람의 일을 기계가 대체하더라도 회사는 노동자들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해 노력한다. 요한 뮐러 BMW 라이프치히 공장 홍보 담당은 "사람의 판단력은 기계보다 유연하기 때문에 모든 공정 과정을 자동화하진 않는다"며 "직원 가족의 생계를 생각해서라도 자동화로 사람을 해고하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독일 라이프치히에 있는 BMW 전기차 생산 공장. 로봇 4대가 자체 조립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사진 BMW]

독일 라이프치히에 있는 BMW 전기차 생산 공장. 로봇 4대가 자체 조립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사진 BMW]

R&D 투자와 기술 강소 기업 생태계, 고성능 차 기술 뒷받침 

들쭉날쭉하지 않은 연구개발 투자와 기술력을 갖춘 강소기업 생태계도 독일 차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 요인이다. 독일무역투자진흥처에 따르면 독일 자동차 산업계는 지난해 총 219억 유로(28조2000억원) 규모를 연구개발에 투자했다. 전년 대비 3.6% 증가한 수치다. 이 같은 R&D 투자 증가는 자율주행 차 등 미래 차 관련 연구와 관련이 깊다. 자동차 부품 전문회사 콘티넨탈은 이 같은 미래 차 기술 개발을 중심으로 지난해 31억300만 유로(4조700억원)의 연구개발비를 투자했다고 밝혔다. 이 회사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이 2016년 6.2%에서 지난해 7.1%로 늘었다. 이 같은 연구개발 투자 성과가 생산 현장에 접목되면서 고품질 자동차 생산의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마누엘 칼바이트 독일자동차산업협회 시장통계분석부장은 "독일의 완성차 제조사들은 가격이 비싸지더라도 최고급 제품을 생산하는 '프리미엄 전략'을 추구한다"며 이를 뒷받침하는 100명 이하 강소기업이 차 부품 산업에만 500개 이상이 있는 것이 독일 차 경쟁력의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라이프치히·포이어바흐(독일)=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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