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지는 산업단지
지난 9일 울산시 울주군 반천일반산업단지. 137만㎡ 규모인 이 단지는 75개 업체가 공장부지 분양을 받았지만 58개 제조업체만 들어섰다. 대부분 현대차·현대중공업에 납품하거나 수출용 자동차 부품, 전자장비를 만드는 업체들이다. 오후 3시 한창 바쁠 시간인데도 널찍한 6차로 도로가 한산했다. 드문드문 화물트럭과 외국인 근로자가 보일 뿐이었다. 입주기업협회 관계자는 “현대중공업 수주 가뭄이 계속되면서 최근에도 협력업체 5~6곳이 부도났다. 사장들은 모두 연락조차 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단지 안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한모(55)씨는 “제조업체 사장들이 ‘어렵다’가 아니라 이제는 ‘끝났다’고 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단지 곳곳 “매각” “임대” 현수막
공장 싸게 내놓아도 거래 안 돼
60대 “차라리 베트남 가서 호프집”
실적 나쁜데 최저임금 크게 올라
“어렵다”는 옛말, 이젠 “끝났다”
30일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올 5월 말 현재 전국 40여 개 국가산업단지 가동률은 평균 82.6%다. 가동률이 70% 이하인 곳도 10곳이나 된다. 부산과 전남의 경제를 지탱하던 녹산산단과 대불산단의 가동률은 60%를 밑돌고 있다. 전북의 국가식품클러스터의 가동률은 37.5%에 그쳤다.
그나마 버티는 기업들도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른다. 14일 창원시 성산구 창원공단 내 한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에는 기계 도는 소리가 시끄러웠지만 직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업체 대표 김모(40)씨 부부만 공장에 있었다. 이 회사는 볼트와 너트 등을 생산하는 2~3차 하청업체로 ‘마치코바(まちこうば·시내에 위치한 작은 공장)’라 불리는 업체다. 15년 전 설립돼 한때는 직원이 6명까지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올 초까지 직원을 모두 내보냈다. 김 대표는 “200만~250만원이던 월급이 최저임금 인상으로 300만원을 넘어섰다. 한 달 매출 2500만원은 늘지 않는데 월급 주고, 기계 임대료 주고 나면 남는 게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창원공단 전체 4698곳 공장 중 직원이 0명인 곳은 150곳이나 된다.
문을 닫는 공장은 속출하는데 제조업에 뛰어드는 신규 기업은 없다.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한 제조업체는 1만1936곳이다. 2014년 9669곳에 비해 20% 이상 많아졌다. 반면에 신규 창업 수는 올 1~5월 사이 7620개에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 8229개에 비하면 7.4%나 줄었다.
공단 위축은 인근 경기에도 곧장 영향을 미쳤다. 야간잔업이 줄면서 야식문화도 사라졌다. 울주군 반천산단에서 식당을 열고 있는 한경혜(52)씨는 “‘내일은 좀 나아지려나’한 게 벌써 1년이 넘었고, 갈수록 나빠지기만 한다”며 “오후 9~10시까지 잔업을 하는 공장이 예전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되는데 식당인들 잘 될 리가 있냐”고 반문했다.
황진호 울산발전연구원 연구위원은 “제조업은 안정적이면서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기 때문에 산단 가동률 저하는 위기의식을 갖고 봐야 할 문제”라며 “대기업, 중소기업, 노동계를 포함한 지역단체까지 참여하는 대화의 장을 만들어 공단을 되살릴 해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서울·인천·천안·울산
박태희·박형수·임명수·신진호·최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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