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향사가 되는 건 한국에서도 외국에서도 힘들다."
화장품 기업 아모레퍼시픽의 대표 조향사 전병배 마스터 연구원(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 고객감성연구 Lab)의 말이다. 관심이 있는 사람은 많지만 그 과정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조향사에 대해 알아보면, 크게 화장품과 샴푸 같은 생활용품에 들어가는 향을 만드는 '퍼퓨머(perfumer)'와 식품용 향을 만드는 '플래이버리스트(flavorist)'로 나뉜다. 퍼퓨머는 화장품회사·생활용품회사·향료회사에서, 플래이버리스트는 식품회사에서 일한다.
일찍부터 향 산업이 발달한 프랑스·영국·미국 등 국가는 많은 일자리가 있지만 국내엔 조향사 수요가 현저하게 적다. 최근 향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 산업이 커졌다고 하지만 아직은 시작 단계다. 조향 팀이 있는 국내 회사는 화장품 회사 아모레퍼시픽·LG생활건강과 화장품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회사인 코스맥스·콜마, 생활용품 회사 애경·CJ라이온, 향료회사 한국화농·한빛향료·고려향료 등이 전부다.
처음 회사에 입사하면 '견습생(트레이니)'이란 이름으로 일정 기간 수천 가지 향을 익히는 트레이닝 과정을 거쳐야만 향을 만들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단순한 향조의 향 하나를 만들더라도 30~40가지의 향료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름난 유명한 향수라면 100가지 이상의 향료가 배합된다. 전 마스터는 "모든 향료의 향을 잘 알고 있어야만 의도하는 향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트레이닝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아모레퍼시픽 연구소에서 사용하는 향료만해도 5000가지가 넘는다.
그 과정도 과정이지만, 일단 타고난 후각 능력에 따라 조향사가 될 수 있고 없고가 갈린다. 되고 싶다고, 열심히만 한다고 조향사가 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일단 조향사가 되려면 향의 차이와 강도 차이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전 마스터에 따르면 의외로 특정한 향을 맡지 못하는 후맹(또는 취맹)도 꽤 많다고 한다. 그래서 향 관련 회사나 교육기관에 들어가면 가장 많이 하는 일이 후각 테스트다. 이 테스트를 통과해야만 조향사 교육을 받을 자격이 생긴다. 회사 내에 있는 연구소나 심지어 사설 학원도 마찬가지다.
그는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조향사에 관심을 가지지만 내가 입사한 1990년대 중반만 해도 사회 전반적으로 조향사란 직업에 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후각 테스트를 통해 내가 이렇게 후각이 좋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향 관련 석사 학위를 따고 6개월간 '만피스(V.mane fils)' '필메니쉬(Firmenich)' 등 유럽의 유명 향료회사 6곳에서 연수를 하며 향 공부에 몰두했다. 지금은 26년 차 조향사로 시장에 맞는 향의 방향을 찾고 후배 조향사들이 만든 향을 평가하는 디렉터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에서 전문적인 조향사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전 마스터의 경우처럼 향을 다루는 회사에 들어가 트레이닝을 받는 게 가장 좋은 방법으로 보인다. 많은 향료를 갖춘 환경에서 다양한 향을 오랜 시간 만들어 볼 수 있는 곳을 지금으로선 기업 외엔 찾기 어려워서다. 이런 곳에 입사하려면 대학에서 화학 계통을 전공하는 게 도움이 된다.
최근에는 작은 공방이나 개인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들이 늘면서 국내에도 조향사 양성을 위한 학원들이 생겼다. 4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향료회사 '한불화농'이 직접 운영하는 '다미아노 아카데미'가 대표적이다. 1년(540시간) 과정으로 매년 1월에 9명씩 모집하는데, 항상 몇 배 수의 사람이 지원해 서류심사·면접의 과정을 거쳐 학생을 선발한다. 교육을 모두 한불화농의 현직 조향사가 맡는 데다 3000가지 이상의 원료를 갖춰 조향사 지망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이밖에도 '센토리' 'GN퍼퓸스쿨' 등이 조향사 양성 과정을 운영한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