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끌다 쪼그라진 원격의료 … “군부대·오지 국한”

중앙일보

입력 2018.08.24 00:03

수정 2018.08.24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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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가 원격의료를 두고 갈팡질팡 하더니 결국 하나마나한 형태로 축소하기로 방향을 정했다.  
 
복지부는 23일 오후 원격의료와 관련한 보건의료 정책 방향 자료를 배포했다. 복지부는 “현행법에서 정한 대로 의사-의료인, 의료기관-의료기관의 원격 협진을 활성화하되 예외적으로 격오지 군부대 장병, 원양선박 선원, 교정시설 재소자, 도서·벽지 주민 등 환자와 의사 간 원격의료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설명했다. 선원이나 재소자처럼 의사를 만날 수 없거나 오지 주민 등의 의사를 만나기 어려운 경우에 국한하겠다는 것이다. 의료 사각지대 해소가 목적이다. 일반환자 대상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못박았다. 복지부는 의료법을 개정하기 위해 국회와 충분히 논의를 하고 기술적·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하기로 했다.

복지부, 정책 방침 정해 공식 발표
노인·장애인 허용 방침 없던 일로
전문가 “시장성 없어 하나마나”

복지부의 이런 방침은 자기 부정의 연속이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먼저 그랬다. 박 장관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하겠다고 밝혔다가 민주당·청와대가 반대하자 없던 일로 했다. 박 장관 소동 이후 당·정·청이 모여 입장을 정리했고 23일 복지부가 공식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복지부는 2016년 6월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도서벽지 주민, 군 장병, 재소자 뿐만 아니라 도시 지역의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장애인까지 대상을 넓혔다. 약 20년 간 오지 주민과 장병을 대상으로 시범사업만 해오던 복지부가 만성질환자로 확대한 것인데, 이는 원격의료의 차원을 한 단계 끌어올리려는 시도였다. 그 해 복지부는 일본에서 환자-의사 간 원격진료를 전면 실시한다는 자료를 배포하며 분위기를 돋웠다.
 
하지만 약 2년 만에 노인·장애인 원격의료는 다시 없던 일이 된 것이다. 정부의 이번 원격의료 방침은 종전과 달라진 게 없다. 돌고 돌아서 20년전으로 다시 돌아간 것이다. 복지부 오상윤 의료정보정책과장은 “의료인 간의 협진(의사-의료인 원격의료)에 무게중심이 실려 있다”고 말했다.  


일본·중국·미국 등 다른 나라는 원격의료를 시행중이고, 특히 일본은 휴대폰을 이용한 포켓닥터를 2년 전부터 도입했다.
 
오상우 동국대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오지나 섬 주민의 의료 사각지대 해소는 원격진료보다는 응급의료체계를 더 강화해주고 이동진료(병원선 등)를 활성화하는 게 더 낫다”며 “복지부의 원격의료는 효과도 덜하고 시장성도 없어 보인다”고 지적한다. 오 교수는 “정보기술(IT) 기기를 활용해 만성환자 혈당관리, 부정맥 관리 등의 기법이 날로 발달하고 있는데, 스마트폰을 활용해 의사와 결합하면 무궁무진한 모델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