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F는 북한이 참여하는 유일한 역내 다자 안보 협의체다. 남북, 북·미가 자연스럽게 조우하며 타협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는 자리다. 이 외무상은 이 자리에서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의 모든 조항을 균형적으로, 동시적으로, 단계적으로 이행해 나가는 새로운 방식만이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하게 현실적인 방도”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미군 유해를 송환했으니 미국도 이에 걸맞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조치에 나서라는 이른바 ‘동시적·단계적 접근법’이다.
ARF서 “동시·단계적 방식이 해법”
미군 유해 송환 걸맞은 조치 요구
폼페이오는 대북제재 이탈에 경고
성 김, 이용호에 트럼프 친서 전달
반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 외무상 연설에 앞선 4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비핵화한 북한’이라는 목표를 손상하는 어떤 위반도 미국은 심각하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국제사회에 경고장을 냈다. 대북제재 전선에서 이탈하지 말라는 얘기다. 이 외무상의 연설 때 폼페이오 장관은 다른 양자회담 일정 때문인지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고 한다.
단, 북·미는 대화의 동력을 이어간다는 제스처를 교환했다. 4일 ARF 회의장에서 폼페이오 장관이 먼저 이 외무상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리고 악수를 청하자 이 외무상도 웃으며 반기는 모습을 노출했다. 성 김 주필리핀 미국대사는 이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보내는 친서를 이 외무상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이 외무상은 ARF에서 11개국과 양자회담을 하면서도 강경화 장관, 폼페이오 장관과의 공식 회담은 거부했다. 강 장관이 이 외무상을 3일 만찬장에서 만났을 때 이 외무상은 “(북한은) 기본적으로 외교당국이 나설 때가 아니라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는 남북 외교장관 회담을 거절한 이유에 대한 답변이었다. 북한에서 그간 핵협상을 담당해 온 것은 외무성이다. 이 외무상이 지금은 외교당국이 나설 때가 아니라고 한 것은 북한이 아직 비핵화 협상을 본궤도에 올릴 뜻이 없다는 의미로 읽힌다.
싱가포르=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