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만 '초소형'이 돼버린 현대인
앤트맨은 마음속으로는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지만, 현실은 생계형 좀도둑인 스캇 랭(폴 러드)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뿐인 딸에게 ‘히어로’처럼 멋지게 보이고 싶으나 교도소에서 갓 출소한 그는 일자리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 ‘마지막’이라는 친구의 꾐에 넘어가 천재 과학자 행크 핌(마이클 더글라스)의 집을 털게 되죠.
그러나 보석을 털기는커녕 행크가 쳐놓은 덫에 걸리고 맙니다. 행크는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 조건으로 스캇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자신이 개발한 첨단 수트와 헬멧을 착용하고 악의 세력에 맞서 싸우자는 것이죠. 과연 평범한 아저씨인 스캇은 딸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히어로’가 될 수 있을까요?
행크 박사가 스캇을 선택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자신의 영달과 공명심을 위해 옳은 일을 하는 사람보다는 자기의 모든 것을 내던져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던 것이죠. 히어로의 어깨에는 평범한 사람보다 더 큰 도덕과 정의의 무게가 가해지기 때문입니다. 특히 앤트맨의 핵심인 몸을 자유자재로 늘렸다 줄이는 기술에는 많은 위험이 따릅니다. 행크 박사 역시 앤트맨 수트 때문에 자신의 사랑하는 부인을 잃었고요.
앤트맨은 마블 작품 중 제일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가족 오락영화입니다. 그러나 가장 과학적이며 이론적으로 난해한 주제를 다루고 있죠. 바로 ‘양자역학’입니다. 앤트맨은 ‘개미’처럼 작아졌다 커졌다 변신하는 것이 자유자재입니다. 영화 속에서 행크 박사는 “원자 사이의 거리를 자유롭게 조정하는 기술을 개발해 앤트맨 수트를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이 때 원자 간 거리를 좁혔다 늘렸다 하는 물질을 자신의 이름을 따 ‘핌’ 입자라고 지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빈 공간은 얼마나 될까요? 『김상욱의 양자공부』라는 책으로 유명한 김상욱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는 “수소의 원자핵이 농구공만 하다고 생각하면 전자는 10km 밖에서 움직이고 있다”며 “전자의 크기는 거의 없다고 볼 만큼 매우 작아서 서울시만한 공간에 농구공 말고는 텅 비어 있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상 인간의 몸은 ‘텅 비어 있는’ 셈이죠.
김 교수의 말처럼 농구공만한 크기의 수소 원자핵과 10km 떨어진 전자 사이의 거리를 좁힐 수만 있다면 영화 속 행크 박사가 말한 대로 ‘앤트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일은 불가능합니다. 원자 속 빈 공간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그 중 입자가 존재할 수 있는 영역은 매우 한정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 영역에 들어 있는 입자를 양자라 부르고 양자가 존재할 없는 빈 공간을 ‘양자 동공(quantum void)'라고 칭합니다.
그러나 앤트맨이 보여준 영화적 상상력만큼은 매우 뛰어납니다. 원자 속에 빈 공간이 많으므로 이를 자유롭게 늘리고 줄일 수만 있다면 사람과 자동차, 건물 등의 크기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매우 창의적입니다. 그런데 유독 최근 들어 ‘소형화’ 된 인간을 다루는 대중문화 작품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1월 개봉한 영화 ‘다운사이징’도 비슷한 소재죠.
2010년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마루 밑 아리에티’도 10cm 인간들의 이야기입니다. 교외의 오래된 저택의 마루 밑에 사는 아리에티 가족은 인간의 눈을 피해 자신들의 세계를 일궈 나갑니다. 아리에티는 인간의 주방에 몰래 침투해 각설탕과 화장지 등을 챙겨 집으로 향합니다. 그러나 주방에 들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험난한 모험입니다. 쥐와 벌레 등 ‘어마어마한’ 크기의 괴물들을 피해 무사하게 귀가하는 것이 가장 큰 사명이죠.
이처럼 최근 들어 ‘마이크로휴먼’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은 현 시대가 품고 있는 사회적 고민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즉, 전 인류적 문제인 환경오염과 자원고갈 등 이슈와 직결돼 있다는 것이죠. 실제로 영화에서 ‘다운사이징’ 프로젝트가 실시된 이유는 지구에 가해지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였죠. 주인공과 같은 소인 36명이 4년간 배출한 폐기물의 양이 고작 비닐봉지 1개뿐일 만큼 이 프로젝트는 큰 성공을 거둡니다.
진화적으로도 인간의 ‘소형화’가 생존의 측면에서 합리적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소설 『제 3인류』에서 인간의 최종 진화 단계로 ‘소인’을 제시합니다. 제1 인류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타이탄과 같은 거인족이며 제2 인류는 현재의 인간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마지막 세 번째 인류는 ‘소인’이 될 것이라는 설정이죠.
예를 들어 가로·세로·높이 1cm의 정육면체가 있는데, 정확히 몸집이 2배가 된다고 생각해보죠. 즉,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2cm가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처음 정육면체의 부피(가로*세로*높이)는 1㎤지만, 다음 정육면체는 부피가 8㎤입니다. 즉 몸집이 2배가 되면 가로·세로·높이도 각각 2배씩 되기 때문에 부피는 총 8배(2의 세제곱)이 됩니다.
똑같은 인간이라고 가정했을 때 부피가 크면 그 만큼 세포 수도 비례해 늘어납니다. 세포가 많아지면 사용되는 에너지도 더욱 커지고, 표면적도 늘기 때문에 외부의 자극과 상처에도 쉽게 노출됩니다. 또 확률적으로 세포 수가 많은 만큼 잘못된 세포가 생겨날 확률도 커 질병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르베르는 ‘마이크로휴먼’이 인간의 최종 진화적 단계가 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생물학적으론 어떨까요?
예를 들어 6500만 년 전 대멸종 때 거대한 운석의 충돌과 이로 인한 기후변화로 지구엔 빙하기가 찾아왔습니다. 푸른 초원에 살던 공룡은 먹이가 줄고 날씨가 추워지면서 생존에 큰 위협을 받고 멸종에 이르렀습니다. 덩치가 큰 공룡은 작은 생물들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했고 체면적이 넓어 외부 온도와 습도 같은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마이크로휴먼’으로의 진화가 우리의 눈에 보일만큼 이뤄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게 최 교수의 설명입니다. 환경의 변화에 따른 자연 선택의 진화가 어느 정도 안정되면 그 때부터는 번식에 의한 성 선택이 더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최 교수는 “일반적으로 키 큰 사람을 선호하는 경향이 많기 때문에 지금의 조건에서 인류가 작아질 가능성은 적다”고 말합니다. 물론 빙하기와 같은 극한적 상황이 온다면 키 큰 사람보다는 작은 사람이 살아남을 확률이 더 높기 때문에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체구가 너무 큰 것보다는 적당한 것이 생명 활동에 유리한 것은 사실입니다. 최 교수는 “장수하는 어르신들을 보면 대개 체구가 작은 분들이 많다”며 “개인의 차원에서 보면 사용하는 에너지도 작고 세포 수도 적어 병에 걸릴 확률도 낮다”고 말합니다. 다만 그는 “개인의 차이를 개체군의 차이로 확대 해석해선 안 된다”고 전제합니다.
대신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인간의 몸집이 소형화 되는 게 아니라 마음의 크기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현대인은 과거에 비해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고 정신적 상처 또한 많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마음은 점점 좁아지고, 나중에는 타인과 교류하던 문 자체를 아예 닫아 버리기도 하죠.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마음을 제대로 다스리고, 그 씀씀이를 크게 갖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물질적으로 더욱 풍요로워지고 넉넉한 삶을 살게 됐지만 정신적인 빈곤은 더욱 심해져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이 그렇다고 해서 이런 세태가 꼭 옳은 것은 아닙니다. 물리적으로 성장한 만큼 정신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계기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스위프트는 소인국 사람들이 몸집이 작은 것보다는 하찮은 것에도 목숨을 걸 만큼 마음이 좁은 것을 지적했습니다. 이들의 모습을 통해 당시의 영국 정치인들이 얼마나 사소하고 보잘 것 없는 일들로 싸우고 있는지 풍자하려고 한 것이었죠. 어쩌면 지금 우리 현대인들도 릴리퍼트 사람들처럼 좀 더 높은 곳에서 멀찌감치 쳐다본다면 ‘속이 좁아’ 보이진 않을까요.
그 옛날 공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德勝才(덕승재) 謂之君子(위지군자), 才勝德(재승덕) 謂之小人(위지소인)” 덕이 능력보다 높으면 군자이며, 덕이 능력에 못 미치면 소인이라고 말이죠. 오랜 시간 동안 우리는 덕보다는 능력에만 신경을 쓰면서 사회 곳곳에 ‘소인(小人)’만 키워온 것은 아닐까 생각됩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윤석만 기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