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대한축구협회가 주최한 언론사 팀장 간담회에서 정 회장은 시종일관 ‘유체이탈 화법’으로 일관했다. 축구협회 엠블럼을 달고 월드컵 본선에 나선 축구대표팀을 객체로 바라보는 듯한 발언이 이어졌다. 대표팀 경기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원인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고, 대표팀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 이유는 외부에서 찾았다.
남 탓 만한 정몽규 회장 간담회
‘16강 목표 과해’ 발언 뉘앙스 논란
슈틸리케 선임, 기술위에 책임 돌려
감독의 실패 거론 4년 전과 판박이
애당초 16강 진출 목표 자체가 과했다는 뉘앙스의 발언도 했다. “우리가 러시아 월드컵 본선 F조에 포함됐을 때 모두가 ‘큰일 났다. 1승이라도 하면 좋겠다’ 생각했을 것”이라며 “(대표팀이) 16강에 가겠다는 주장을 계속했는데, 독일을 2-0으로 이긴 것만 해도 기적적”이라고 했다.
대표팀과 A매치에 대한 팬들의 관심이 줄어든 것에 대해서는 ‘초대형 정치 이슈’ 핑계를 댔다. 정 회장은 “남북 정상회담을 비롯해 대형 이슈들이 많았다. 그래서 월드컵을 하는지 안 하는지 모를 정도로 흥행이 어려웠다”며 정치권과 국제 정세를 탓했다.
정 회장의 발언은 사실상 자아비판이나 마찬가지다. 4년 전 브라질 월드컵에서 대표팀이 조별리그의 벽을 넘지 못하자 그는 “향후 각급 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게 기술위원회를 개편하는 등 쇄신책을 마련하겠다. 현재의 시련을 거울삼아 더 큰 도약을 이루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4년이 흘렀는데도 모든 게 그대로였다. 과감한 투자도, 혁신적인 변화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향후 4년간 대표팀의 큰 그림을 이끌 지도자를 선임하겠다”고 밝혔다. 울리 슈틸리케(독일) 전 감독을 데려왔다가 중도 경질한 시행착오에 대해서도 정 회장은 “이용수 전임 기술위원장이 결정한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월드컵 도전 실패의 책임을 대표팀 감독에게 돌리는 방식도 4년 전과 판박이다. 이날 축구협회는 김판곤 위원장 주재로 대표팀감독 선임위원회를 열고 이달 말 끝나는 신태용 현 감독을 새 감독 후보군에 포함하기로 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신 감독은 안 된다’고 미리 선을 긋지 말라”고 했지만, 현실적으로 신 감독을 재신임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축구협회는 4년 전 브라질 월드컵 직후 홍명보 당시 감독(현 축구협회 전무)에게 “잔여 임기를 보장할 테니 대표팀을 맡으라”고 통보했다가 여론이 악화되자 자진 사퇴 형식으로 하차시킨 이력이 있다.
축구협회는 앞으로 10명 정도의 감독 후보군을 추린 뒤 개별 접촉에 나설 예정이다. 김 위원장은 “대표팀 구성원들이 배고파하는 부분을 잘 안다. 강력한 대표팀을 만들어갈 수 있도록 철학이 뚜렷하고 유능한 감독을 모셔오겠다”고 밝혔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