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USCD) 석좌교수
한국과 미국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바라보는 태도는 사뭇 다르다. 6·13 지방선거 결과가 말해주듯 한국 국민은 문재인 대통령이 싱가포르 회담에 기울인 노력을 지지했다. 이와 반대로 트럼프 대통령은 수세에 몰렸다. 미국 분석가들 사이에서는 회담의 구체적인 성과가 과대평가됐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앞서 내가 북·미 정상회담을 전망했던 대로다.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겠으나, 일반적인 우려 사항은 다음과 같다.
싱가포르 회담은 얻은 것은 없고
걱정만 잔뜩 몰고 온 것으로 평가
그럼에도 희망의 끈 놓을 수 없어
일단은 ‘불신 보류’의 인내가 필요
한 문장으로 처리한 비핵화 문구는 모호하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호언장담과 달리 공동성명에는 북한의 비핵화 실행에 대한 명시적인 표현이 없다.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은 북한이 그동안 취해온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 협상 전략이 승리했음을 의미한다. “한반도에서의 완전한 비핵화” 역시 북한이 사용하는 말이다.
진짜 놀라운 발언은 북·미 정상회담이 아닌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에서 나왔다. 북한과의 협상을 진행하려면 한국과 미국의 양보가 필요할 테고, 그런 면에서 한·미 연합훈련을 거래를 위한 카드로 쓸 수 있다. 문제는 훈련 중단 약속 대가로 트럼프 대통령이 얻어낸 게 없다는 점이다.
글로벌워치 6/29
정상회담은 중국과 러시아가 수행할 역할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요컨대 정상회담은 그동안 미국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던 중국의 ‘쌍중단(雙中斷, 북한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제안이 승리한 것으로 읽히도록 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촉구해 온 핵·미사일 실험 중단을 북한이 지속하는 한 한·미 연합훈련도 계속 중단될 것이다.
미군 유해 송환 역시 생각해 볼 게 많은 사안이다. 이 문제가 갖는 현실적 의미도 살펴봐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지자들에게 유해 송환을 협상의 “승리”로 자평했다. 그러나 북한은 남북 이산가족 상봉 때처럼 이 문제를 인도적 차원에서 이뤄진 양보라고 주장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을 대하는 태도도 걱정거리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제 문제가 다 해결됐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북한이 더 이상 위협 대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미국은 빈털터리로 돌아왔고 어려운 난제들이 생겨났다. 폼페이오 장관에게는 완벽한 협상 팀이 있다. 그러나 북한이 어떤 실질적인 이행도 하지 않을 경우 폼페이오 팀은 협상 동력을 잃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불신을 유예할 수밖에 없다. 한반도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일말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문재인 대통령은 핵 문제에 대한 중심을 단단히 잡고 있다. 중국의 대북제재에 대한 의지가 불분명하지만 3차 북·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북한의 비핵화에 협력하고 북한의 경제 개혁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미국에는 협상의 핵심 의제인 핵시설 폐기를 기술적으로 검증할 팀이 준비돼 있다.
김정은 위원장의 속내를 알 수 없다는 점도 우리가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다. 김 위원장 자신조차도 잘 모를 수 있다. 최대한 시간을 끌며 핵무기를 보유하려 들겠지만 진로를 변경할 가능성 또한 없지 않다. 협상 테이블에 더 좋은 대안을 올려놓을 수 없는 한, 남·북·미 정상이 이룬 이 협상이 끝까지 실현되도록 해야 한다. 다른 선택지가 보이지 않는다.
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SCD)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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