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 서식지 물웅덩이에 갇힌 잉어 20마리 운명은···

중앙일보

입력 2018.06.28 14:59

수정 2018.06.28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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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을 절반가량 막고 이뤄지는 준설공사가 한창인 경기도 동두천시 신천. 지난 25일 하천 절반 정도가 바닥을 드러낸 모습. [사진 연천동두천닷컴]

 
작고 야트막한 하천 물웅덩이에 갇힌 잉어 떼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물길을 막고 시행 중인 하천 준설공사로 인해 생겨난 얕은 물웅덩이에 갇힌 20여 마리 잉어 무리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지난 25일 오전 11시 25분쯤 경기도 동두천시 보산동 신천에 생겨난 물웅덩이에서 어른 팔뚝만 한 크기의 잉어 20여 마리가 한 시민에 의해 우연히 발견됐다. 동두천 시민 김도영(도예가)씨는 “신천의 한 다리를 건너다 물이 마른 하천 바닥에 생긴 깊이 10∼20㎝, 직경 2∼3m 크기의 작은 물웅덩이에 잉어 무리가 고립된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준설공사로 생긴 작고 얕은 신천 물웅덩이에 잉어 떼가 고립돼 있고, 그 옆에서 백로와 왜가리가 나타나 호시탐탐 잉어를 노리고 있다. [사진 연천동두천닷컴]

준설공사로 생긴 작고 얕은 신천 물웅덩이에 잉어 떼가 고립돼 있고, 그 옆에서 백로와 왜가리가 나타나 호시탐탐 잉어를 노리고 있다. [사진 연천동두천닷컴]

 
그는 뜨거운 여름 땡볕에 그대로 노출된 물웅덩이는 하루 정도 후면 빠짝 말라 없어질 정도로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고 했다. 시시각각으로 물이 말라가는 바람에 잉어 떼는 집단 폐사를 눈앞에 둔 위기 상황이었다고 했다. 이 물웅덩이는 경기도가 하천 정비를 위한 준설공사를 위해 신천 물길 절반가량을 막고 하천물을 빼내 만들어진 것이었다.

동두천 신천 준설공사로 작은 물웅덩이 생겨
이곳에 어른 팔뚝만한 잉어 20여 마리 고립
여름 땡볕에 하루 정도면 물 말라버릴 위기

물웅덩이엔 백로와 왜가리 나타나 위협
잉어 떼는 한 몸처럼 밀착해 위기 대응
의양동환경운동연합, 잉어 구조 준비도

다행히 발견된 날 밤 집중호우 내리면서
고립됐던 잉어 떼 신천으로 모두 돌아가
환경단체 “공사 관계자의 무관심에 허탈”

잉어 떼의 위기상황은 이뿐 아니었다. 물웅덩이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할 처지에 놓인 잉어 떼 주변으로는 신천에 서식하는 백로와 왜가리가 날아들었기 때문이었다. 백로와 왜가리는 잉어를 잡아먹기 위해 무리 주위를 서성거리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준설공사로 생긴 작고 얕은 신천 물웅덩이에 잉어 떼가 고립돼 있고, 그 옆에서 백로가 나타나 호시탐탐 잉어를 노리고 있다. [사진 연천동두천닷컴]

준설공사로 생긴 작고 얕은 신천 물웅덩이에 잉어 떼가 고립돼 있고, 그 옆에서 왜가리가 나타나 호시탐탐 잉어를 노리고 있다. [사진 연천동두천닷컴]

 
백로와 왜가리가 날카로운 부리를 앞세워 잉어 떼 코앞까지 바짝 다가가기를 반복했다. 이럴 때면 잉어 떼는 일제히 몸을 밀착시킨 채 물 바닥으로 바짝 내려앉았다. 이어 슬슬 피하거나 원을 그리듯 빙빙 돌기도 했다. 그리고는 머리를 물속 깊은 곳으로 넣고 꼬리를 백로와 왜가리 쪽으로 향한 채 집단으로 비상 대응 태세를 갖추기에 바빴다.


백로와 왜가리는 잉어가 워낙 큰 데다 마치 모두가 한 몸인 듯 밀집한 채 계속 움직이자 주춤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선뜻 먹이 사냥에는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때마침 주변 신천 바닥에서 준설공사 중이던 포크레인 두 대의 요란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이에 놀란 백로와 왜가리가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리면서 잉어 떼가 잠시 위기일발 상황에서 벗어나는 모습도 목격됐다.

준설공사로 생긴 작고 얕은 신천 물웅덩이에 잉어 떼가 고립돼 있고, 그 옆에서 왜가리가 나타나 호시탐탐 잉어를 노리고 있다. [사진 연천동두천닷컴]

준설공사로 생긴 작고 얕은 신천 물웅덩이에 잉어 떼가 고립돼 있고, 그 옆에서 백로가 나타나 호시탐탐 잉어를 노리고 있다. [사진 연천동두천닷컴]

 
이날 시민의 신고를 받은 지역 환경단체인 의양동환경운동연합은 즉각 현장으로 달려나가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 환경단체는 이튿날 아침에 잉어 떼를 모두 건져내 원래 살던 공사현장 가물막이 너머 신천으로 옮겨 방류해줄 계획을 세웠다.

준설공사로 생긴 작고 얕은 신천 물웅덩이에 잉어 떼가 고립돼 있고, 그 옆에서 백로와 왜가리가 나타나 호시탐탐 잉어를 노리고 있다. [사진 연천동두천닷컴]

물길을 절반가량 막고 이뤄지는 준설공사가 한창인 경기도 동두천시 신천. 지난 25일 포크레인 2대가 물을 빼낸 곳이서 준설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연천동두천닷컴]

 
천만다행. 이날 밤 동두천 지역에는 집중호우가 쏟아지면서 바닥을 드러냈던 물웅덩이 일대 신천에 하천물이 가득 들어찼다. 이 덕분에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에 처했던 잉어 떼는 모두 물웅덩이에서 벗어나 신천으로 살아서 돌아가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됐다.
 
현장 확인 후 잉어 떼 구조작전을 세웠던 이석우 의양동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공사 관계자들이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어도 잉어 떼가 갇힌 물웅덩이를 한눈에 찾아볼 수 있었고, 미리 이 같은 상황을 예견하고 대비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며 허탈해했다.

물길을 절반가량 막고 이뤄지는 준설공사가 한창인 경기도 동두천시 신천. 지난 25일 바닥을 드러낸 모습(위쪽)과 지난 26일 집중호우로 물이 가득 들어찬 장면. [사진 연천동두천닷컴]

 
그는 “사람들을 위한 준설 공사로 인해 생긴 야트막한 물웅덩이에 애꿎게 잉어 떼가 갇혀 다 죽게 생겼는데도 이를 방치한 공사 관계자들의 생태계 보전에 대한 무관심에 분통이 터진다”고 지적했다.
 
동두천=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