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끄무레 않고 거무스름 달라진 원조 평양냉면 … ‘옥류관’에 무슨 일이?

중앙일보

입력 2018.05.19 00:02

수정 2018.05.19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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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의 음식만행(飮食萬行) 원조 평양냉면 추적기

4ㆍ27 남북정상회담에 등장한 평양 ‘옥류관’의 평양냉면. 면이 짙은 갈색이다. [중앙포토]

서울의 냉면집들이 이른 성수기를 맞았다. 알다시피 남북예술단 교류와 남북정상회담의 영향이다. 걸그룹 ‘레드벨벳’이 평양에서 맛본 냉면은 우리의 상상(?)과 많이 달랐다. 식초와 겨자를 치고 붉은 양념도 넣었다. 냉면은 소금 간이 된 맑은 육수에 아무것도 넣지 않고 먹어야 한다는 남쪽의 ‘냉면 순수파’에게는 남다른 일이었다. 이른바 원조랄 수밖에 없는 평양의 취식법이 준 충격이었다. 남북정상회담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이 일부러 평양냉면을 회담장까지 날라 대접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평양냉면에 대한 자부심이 깊게 드러났다.  
 
이른바 ‘면스플레인 오류설’도 화제를 모았다. 냉면에 대해 참견하고 설명한다는 뜻의 ‘면스플레인’이 정작 북한의 정통 냉면과는 서로 들어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식초와 겨자는 치지 않으며 면은 순 메밀을 써 ‘입술로도 끊어질 정도’로 부드러운 것이 진짜 평양냉면이라는 남쪽의 오랜 인식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우리가 영상과 사진으로 확인한 평양 ‘옥류관’의 냉면은 거의 칡냉면이라 할 정도로 검었고, 실제로 어느 정도 질겼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그동안 진짜라고 믿었던 남쪽의 평양냉면은 가짜(?)였던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오히려 남쪽의 냉면이 과거의 평양냉면의 본령에 더 가까울 수 있다는 취재 결과가 나왔다.

4ㆍ27 남북정상회담 만찬 모습. 남북의 지도자가 냉면을 먹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평양에서 ‘옥류관’ 냉면을 갖고 와 접대했다. [중앙포토]

나는 1993년과 96년 중국을 방문했다. 베이징(北京)의 북한식당 ‘해당화’와 투먼(圖們)의 조중(朝中) 합작식당에서 냉면을 먹었다. 그때만 해도 냉면이 지금 평양에서 보여준 냉면처럼 거무스름하지는 않았지만, 희거나 노란빛을 띤 속 메밀 색깔도 아니었다. 쫄깃쫄깃한 맛도 상당해서 복무원에게 묻자 “메밀이 원래 그렇다”는 대답만 들었다. 의아한 일이었다. 겉껍질을 섞어 쓴 까닭일까. 껍질을 섞으면 색깔은 갈색에 가까워진다. 그러나 쫄깃쫄깃하지는 않다. 그러니 그것도 정확한 분석이 아니다.

희끄무레한 줄 알았던 평양냉면
정상회담 만찬에선 거무스름해
서울서 '면스플레인 오류설' 돌아

북햔 고난의 행군 시기, 순 메밀 포기
수확량 많은 감자녹말 섞어서 사용
서울 ‘우래옥’ 면발이 원조와 흡사

한 단서가 있다. 북한 출신 냉면요리사 윤종철씨는 한 인터뷰에서 “옥류관 냉면은 메밀 40% 감자녹말 60%를 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매우 혼란스럽다. 북한에서 냉면을 소개하는 어떤 매체에서도 녹말을 60%나 섞는다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우선 평안도 출신 시인 백석(1912∼96)의 시 ‘국수’를 보자. 국수는 냉면을 이르는 평안도의 통칭이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이 히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국수’ 부분. 1941년 ‘문장’)’  


히수무레는  ‘희끄무레’란 뜻이다. 엷게 조금 허연 모양이다. 지금 평양냉면처럼 갈색이 아니다. 그러니까 언제부터인가 평양냉면이 검어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평양에서 살다가 월남한 ‘우래옥’의 김지억(86) 전무는 지금 우래옥에서 파는 면이 평양의 것과 흡사하다고 밝힌 바 있다. 서울의 유명 냉면집 사장들도 우래옥이 평양의 면을 최대한 재현했다고 입을 모은다. 우래옥의 면은 알다시피 노랗거나 약간의 회색이 도는 흰색에 가까운 면이다. 메밀이 60% 이상 함유된 상태다. 이번에 확인된 옥류관 냉면의 갈색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북한의 공식 요리 책자에서는 냉면이 검게 나오지 않는다. [사진 박찬일]

『조선녀성』(2008) 『료리사의 벗』(2014) 『조선료리 일어판』(1970) 등 북한의 주요 요리서적에서 냉면의 메밀 배합량을 살펴봤다. 100%가 제일 많았다. 『맛좋은 국수』(1990)에서만 ‘메밀 7’에 ‘감자전분 3’을 배합하고 있어 오히려 이채로웠다. 여기서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갈색의 면으로 화제가 된 옥류관의 주방장 김성일은 이렇게 쓰고 있다. “주원료는 메밀과 감자전분이다(‘천리마’ 1991년 10호).’ 
 
자료를 추적했다. 메밀가루 100% 내지는 70% 이상의 냉면이 변한 이유가 있었다. 예상대로 90년대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가 이유였다. 메밀 흉작 등으로 메밀 100% 냉면을 포기하기에 이른 것이다. 메밀은 단위면적당 소출이 일반 작물에 비해 아주 적다. 감자나 고구마를 심는 것이 식량 사정상 훨씬 유리하다. 메밀 재배량을 줄이고 양 중심으로 전환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면서 냉면 맛이 변한 것을 스스로 반성하고 질타하고 있는 글이 ‘통일문학’ 2006년 2호에 실려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1990년대 중반기에 옥류관 국수(냉면)의 질이 떨어지는 경향을 보여 왔다. 위대한 장군님(김정일)은 이를 용납하지 않으셨다. 옥류관은 평양랭면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고 남조선 사람들과 해외동포들도 평양에 오면 누구나 옥류관 평양랭면을 먹고자 하는데 지금 옥류관에서는 순 메밀가루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함경도의 농마(전분)국수와 평안도의 메밀국수를 뒤섞은 것 같은 범벅국수를 만들고 있다.”
 
우리가 최근 목격한 북한의 냉면은 이 시기에 변화된 것일까.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남한에서 ‘히수무레’한 메밀 중심 면을 쓰는 냉면집이 오히려 당대 북한 냉면보다 더 원형을 잘 지키고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북한에서는 음식에도 유일 영도 체제의 강력한 의도가 실린다.[사진 박찬일]

음식은 정치경제적 조건에 따라 변하게 마련이다. 설렁탕에 국수가 들어간 것을 우리는 정통으로 알지만, 실은 박정희 정권 당시 쌀 소비를 줄이고 값싼 수입 밀가루를 많이 활용하려는 행정명령에 의한 것이었다. 62년 농림부에서 고시를 통해 탕반류에 밀국수를 30%씩 넣어 팔도록 했던 것이다. 어쨌든 옥류관에는 김정일이 알려주는 냉면 먹는 법이 적혀 있다.  
 
①농마국수(전분국수, 함흥식 냉면)에는 양념장을 치지만, 냉면에는 치지 않는다.  
②냉면집 식탁 위에는 예로부터 간장병과 식초병, 고춧가루 단지만 놓았다. 파나 마늘은 메밀의 구수한 맛을 해치므로 넣지 않는다.  
③식초는 육수에 치지 말고 국수발에 친 다음 육수에 말아야 제 맛이 난다.  
 
정리하자면 양념장은 안 되지만 고춧가루는 오케이, 파는 넣지 않으며 식초는 국숫발에 직접 친다는 말이다. 우래옥 김지억 전무의 “꼭 면에 식초를 쳐서 들라우!”하는 설명과 일치한다.  

서울 우래옥의 평양냉면. 원조 평양냉면을 최대한 재현했다는 평을 듣는다. 신인섭 기자

북한이 평양냉면에 들이는 공은 상상 이상이다. 통치권의 일부로 본다. 사회과학원 력사연구소 김지원 연구원은 ‘평양랭면’이라는 칼럼(‘천리마’ 1996년 8호)의 서두를 이렇게 시작한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평양랭면은 예로부터 이름이 높습니다. 조선 사람은 누구나 다 국수를 좋아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고난의 행군 시기 메밀 흉작 내지는 의도적인 수확 조절로 냉면 사리가 바뀌었다는 추정은 생각보다 파장이 클 것 같다.  
 
우리는 평양냉면에 대해 여전히 잘 모른다. 육수도 마찬가지다. 소, 돼지, 닭, 꿩을 다 다르게 배합한다. 소고기만 들어가는 것도 있고 소, 닭, 돼지 등이 ‘조합’으로 짝을 이루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전혀 색다른 육수 배합이 전통으로 소개되고 있다. “평양랭면의 국물은 소고기를 끓인 것이 아니라 소뼈와 힘줄, 허파, 기레, 통팥, 천엽 등을 푹 끓여…(성문호, ‘통일문학’ 2006년 2월호).”
 
한국의 냉면집에서 소주 반주를 하다 보면 꼭 듣는 말이 있다. ‘선주후면(先酒後麵)’이다. 기생집의 풍속이라는 둥, 일제강점기 일본의 메밀국수 먹는 관습이 전해지는 것이라는 둥 말이 많았다. 이에 대해 북한 잡지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선주후면이란 자리에 앉으면 먼저 술을 들고 후에 국수를 먹는다는 평양 고유 소감을 한문 투로 옮긴 것이다. 선주후면은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관서지방에서 우리 선조들이 귀한 손님에게 적용하는 식사법이다. 성격이 강직하고 용맹한 평양사람들은 연한 술을 마시는 남도사람들과 달리 독한 술을 즐겨 마시었다.”
 
평양냉면은 이북의 음식이지만, 우리 민족의 자랑거리라고 할 수 있다. 남한에서도 즐겨 먹은 지 100년이 넘었다. 산수화처럼 여백의 미를 살리고, 무채색의 농담(濃淡)으로 멋을 내는 것처럼 보인다. 흥미로운 건 여전히 냉면은 한국을 방문하는 서양인에게 혐오음식 상위권에 든다는 점이다. 냉면은 정말 어려운 음식임에 틀림없다.
 
 박찬일 음식칼럼니스트 chanilpark@naver.com 
 
박찬일 
글 잘 쓰는 요리사. ‘로칸다 몽로’ ‘광화문 국밥’ 등을 운영하며 음식 관련 글도 꾸준히 쓰고 있다. 본인은 ‘한국 식재료로 서양요리 만드는 붐을 일으킨 주인공’으로 불리는 걸 제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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