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은 이날을 ‘분노의 날’로 정하고 가자지구 접경지역 등에서 3만5000명이 모여 대규모 반대 시위를 벌였다.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이 시위대에 총격을 가해 14세 소년을 포함해 현지시간 오후 8시 현재 팔레스타인 주민 최소 52명이 숨지고 2400명이 다쳤다. UN주재 팔레스타인 대사는 사망자에 아동 8명도 포함됐다고 전했다.
가자지구 등 대규모 시위 벌어져 최소 50여명 숨져
2000명 넘게 부상…"2014년 이후 최악 유혈 사태"
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이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해 14일(현지시간) 개관했다. 전야제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왼쪽)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보좌관이 인사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예루살렘 남부 아르노나 지역에 있던 미 영사관을 대사관으로 바꾼 이날 개관식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장녀 이방카 트럼프 백악관 보좌관과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등 800여 명이 참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지만 영상을 통해 축하했다. 그는 트위터에 “이스라엘에 엄청난 날! 축하한다”고 올리며 개관식이 폭스뉴스에서 생중계 된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 자리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역사를 만들었다”며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영원하고 분할되지 않는 수도”라고 화답했다.
미국의 대사관 이전에 이스라엘은 축제 분위기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위대하게 만들었다”는 플래카드가 버스에까지 내걸리고 이스라엘 프로축구팀 ‘베이타르 예루살렘’은 구단 명칭을 ‘베이타르 트럼프 예루살렘’으로 바꿨다. 전날 열린 전야제에서 네타냐후 총리는 “다른 나라도 예루살렘으로 대사관을 이전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에 대사관을 두고 있는 86개국 중 개관식 초청에 응한 것은 33개국이라고 로이터는 전했다.
14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대규모 반이스라엘 시위가 벌어진 가운데 팔레스타인 시위대가 이스라엘군이 쏜 최루가스를 피해 달아나고 있다. [AFP=연합뉴스]
트럼프 정부의 대사관 이전 결정은 예루살렘을 어느 국가에 속하지 않는 도시로 규정한 유엔 결의안과 배치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해결을 위해 국제사회가 추구해 온 ‘2국가 해법’도 타격을 받게 됐다.
현재 미국은 중동 평화 협상에서 역할을 할 여지가 줄어들었고 유엔 등 국제기구나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 국가들도 팔레스타인 문제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이란과 무력 충돌도 불사하고 있어 중동 정세는 더욱 불안해지고 있다.
하지만 아랍 국가들이 과거와 달리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고 가자지구를 제외한 서안 지역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지 않아 새로운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민중봉기)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하마스 지도자 신와르는 “이스라엘의 경제 봉쇄로 가자지구는 거대한 감옥이 됐다”며 “여기서 서서히 죽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우리는 감옥의 벽을 부수러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가자지구에는 11년 동안 굶주리고 억압받은 굶주린 호랑이가 있다. 그 호랑이가 이제 풀려났으니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사관 이전은 중동 갈등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셈이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