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 사는 이들은 대부분의 시간 동안 불행했다. 애당초 나무에서 내려온 것 자체가 엄청난 실수였다는 의견이 점차 퍼졌다. 어떤 이는 바다에서 나오지도 말았어야 했다고 했다. 그러던 중 한 남자가 기분 전환도 할 겸 이제는 사람들끼리 좀 잘해주면 얼마나 좋겠냐고 말했다는 이유로 나무에 못 박혔다.
그로부터 약 2000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한 여자가 오랜 세월 내내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고 있었는지 문득 깨달았다. “불편하게 해서 죄송합니다(We apologize for the inconvenience).” 조물주가 피조물에 보내는 마지막 메시지를 안 후였다.
더글러스 애덤스의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 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속 너스레다. 더글러스는 안내서를 두곤 “무한하게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우주 속에서 인생을 이해해 보고자 애쓰는 사람에겐 없어선 안 될 지침서”라고 했다. 그러곤 “중요한 오류가 있다면 잘못된 쪽은 항상 (안내서가 아닌) 현실”이란 넉살도 떨었다. 거대한 우주만큼이나 배포 큰 농담이다.
사실 나란 존재는 수천억 개 은하 중 하나에, 또 그에 속한 수천억 개 별 중 하나인 태양에, 또 그에 딸린 8개 행성 중 하나인 지구에, 또 거기에 사는 870만 생물종 가운데 하나인 현생인류 76억 개체 중 하나일 뿐이다. 무한소다. 혹자는 그래서 기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아무튼 어쩌랴. 나라 안팎의 이런저런 소식에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려운 이때 시선을 무한성에 돌려보면 어떨까. 혹시 아나, 더글러스의 우주와 조우하게 될 수도.
고정애 중앙SUNDAY 정치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