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USKI)가 우리 정부의 예산 지급 중단으로 다음달 11일 문을 닫는다고 한다. 과연 우리도 USKI를 사사카와 재단과 마찬가지로 ‘독립성 보장’ 차원에서 마냥 손 놓고 지켜보는 게 옳았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우리 정부가 세련되지 못한 대응을 한 건 맞지만 기본적인 문제점은 USKI에 있는 게 맞다. 몇 가지 따져보자.
암행어사 행세에 '문제의 본질' 퇴색
오만한 한미연구소, 한심한 우리 정부
사실 최근 USKI는 뚜렷한 연구 실적이 없었다. 연구보고서는 2015년 이후 끊겼다. 특별보고서는 2016년 8월 이후 나오지 않았다. 순수 연구비는 분담금의 1%도 안 되는데, 인건비는 56%나 되는 기형적 구조다. 지난 보수 정권 때부터 나온 비판이었다. 그렇다면 개선 방안을 협의, 요청하고 그래도 안 되면 조치를 취하는 게 당연하다. 잘못 알려져 있지만 일본 또한 국가 예산이 들어가는 워싱턴의 싱크탱크, 대학에 대해선 단호하게 개입한다. 정책 방향이 안 맞으면 가차 없이 지원을 끊고, 심지어는 특정 학자에게 “돈을 반납하라”고 요구한 경우도 있다.
또 하나. 구재회 소장 스스로 얘기했듯 USKI에는 보수 정치인뿐 아니라 많은 진보 정치인이 방문학자로 왔다. 최근에는 현 정권 실세라는 양정철 전 비서관을 예외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때그때 힘 있는 여야 정치인, 공무원, 언론인을 초빙하고, 워싱턴을 찾은 실력자들에게 행사 장소를 제공하는 사랑방이 돼 버렸다. 공공외교 거점과는 거리가 멀어졌다는 지적이 많다. 이번 사태가 ‘보수 인사 손보기’란 프레임이 될 수 없는 이유다. 일각에선 산하 ‘38노스’가 사라지면 북한 분석 노하우를 잃게 되는 것 아니냐고 한다. 하지만 38노스는 우리 연간 분담금(2억원)의 수십 배나 되는 거액을 카네기·맥아더 재단으로부터 지원받고 있다. 존속에 문제가 없다.
갈루치 이사장은 “(이번 사태가) 한국의 위상과 메시지를 깎아내릴 것”이라고 한국 정부를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돈은 돈대로 주고, 욕은 욕대로 먹었다.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연구소 운영이 취지대로 잘 안 굴러갔으면 그냥 조용히 절차를 거쳐 예산을 끊거나 대안을 찾으면 되는 일이었다. 다른 나라도 그렇게 한다. 너무 거칠게 다뤄 오해만 키웠다. 청와대 행정관이란 사람은 암행어사라도 된 양 여기저기 요란하게 오버하고 다녔고,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갈팡질팡 양쪽 눈치만 보다 혼란만 키웠다. 이런 걸 두고 ‘돈 주고 뺨 맞는다’고 한다. 오만한 USKI, 한심한 정부. 도긴개긴이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