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호 논설위원
지난 주말 4953명을 뽑는 국가공무원 9급 공채 필기시험에 15만5388명이 응시해 40.9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지난달 ‘현대사회와 행정 28권’에 게재된 ‘공무원시험준비생 규모 추정 및 실태에 관한 연구’(김향덕·이대중)에 따르면 공시생 규모는 44만 명으로 추정됐다. 이는 우리나라 청년 인구(만 20∼29세·644만5000명)의 6.8%, 지난해 수능 응시자(59만3000여 명)의 75%에 해당한다. 논문에서 공시생 413명에게 시험 준비 동기를 물었더니 역시 직업 안정성(54.5%)을 꼽는 이가 가장 많았고 안정된 보수(21.3%), 청년실업 심각(14.3%) 등의 순이었다. ‘국가 봉사’라는 응답은 2.9%에 그쳤다. 하긴 드라마 ‘라이브’에서 사명감보다 밥 먹고 사는 게 더 급하다는 꺽다리 염상수(이광수 분)도 불법 다단계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하다가 경찰에 입문한다.
공시 열풍을 공시생 열 명 중 예닐곱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봤고, 다른 진로를 가는 데에도 도움이 안 된다고 답했다. 공시 열풍이 결국 능력 있는 젊은이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국가적 손실이라는 점을 공시생 스스로 잘 알고 있다는 얘기다. 나아갈 방향도 정확하게 짚었다. 이들이 대안으로 꼽은 건 양질의 청년 일자리 창출(46.4%)과 기업 근무환경 개선(31.3%)이었다.
드라마 속 한정오와 염상수는 때로는 감정노동자처럼 시달리면서도 일상에서 상식을 지켜가는 좋은 경찰이 될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노량진 공시촌을 방문해 예비 공무원들의 꿈을 ‘격려’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드라마 주인공들처럼 막판까지 몰리다가 공시생을 선택하는 일이 없도록 좋은 일자리를 민간에서 만드는 것이다. 청와대의 일자리 상황판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면 그곳에 공시생 숫자를 가장 크게 걸어놨으면 한다. 공시생 숫자가 줄어들지 않는 한 청년 일자리 정책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서경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