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제정된 무역확대법 제232조는 사실상 용도가 거의 폐기된 무역조항이다. 지금까지 모두 26차례 조사에 인용됐지만,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이후에는 2001년 철광석과 철강 반제품 조사를 포함해 불과 2건만이 이 조항에 근거해 조사됐다. 그마저도 모두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다. WTO 규범에서도 국가안보를 훼손하는 무역을 제한할 수 있는 조항이 있지만 제232조와 같은 국내산업 보호 목적은 아니다.
철강은 모든 제조업 기초소재라
원가 인상 미 기업들도 움직일듯
한국 자동차·가전 수출에 직격탄
이이제이와 합종책 등 구사해야
이번에 논란이 되는 철강과 알루미늄은 거의 모든 제조업의 기초소재로 사용되기에 만일 고율 관세 부과로 가격이 인상되면 관련 기업에는 생산비 상승의 부정적인 영향이 매우 크다. 따라서 철강과 알루미늄을 중간재로 사용해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은 관세 인상에 대응해 비용 절감 노력을 다각도로 하겠지만 결국 행정부에 관세 인상을 통한 국내 산업 보호를 요청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미국 경제사에서 나타나는 ‘보호의 수직적 연계’라는 현상이다.
한국 정부로서는 대책 마련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이젠 미국 유권자들에게 직접 다가갈 수밖에 없다. 특히 이번 관세인상 결정 과정에서 소외돼 생산비용 상승을 감내해야 하는 미국 기업들과 관련 협회, 그뿐만 아니라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소비자들에게 호소해야 한다. 이들이 미국 지역정치인들을 설득하고, 다시 정치인들은 백악관을 설득하도록 해야 한다. 일종의 ‘이이제이(以夷制夷)’다.
이와 별도로 한국 정부는 조심스럽지만, 미국 정부의 관세 인상에 대비해 상응하는 보복의 범위에 대해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잠재적인 보복 대상 제품 생산기업들과 그 기업들이 소재하는 지역의 상·하원 의원들을 압박해 이들이 관세인상 저지에 나서게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WTO 체제에서 비슷한 생각을 가진 나라들, 특히 EU·캐나다·일본과 긴밀한 공조 모색이 필요하다. 합종책(合縱策)인 셈이다. 한국 혼자서는 효과적으로 미국을 상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전적인 미국 내 여론설득 작업에서부터 사후적인 WTO 분쟁 및 보복에서도 공동보조가 필요하다.
세계는 이미 1930년대 경험을 통해 일방적 관세인상과 보복이 반복되는 무역전쟁은 승자가 없는, 모두가 지는 게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과 WTO 중심의 다자무역체제는 그래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미 행정부가 과거의 교훈을 외면한다면 불행한 역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미국 국민을 포함한 전 세계인들에게 돌아간다. 부디 미 행정부가 역사의 교훈을 직시하고, 미국 국민은 현명한 시민의식으로 행정부를 감시하길 바란다.
원용걸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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