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호프만 감독의 ‘한여름밤의 꿈’을 보며 시종일관 키득키득 웃음을 터뜨리던 나는 어떤 장면에서 불현듯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말았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리메이크하면서, 영화는 또 하나의 액자 속 이야기를 첨가하는데 그것은 서툴기 그지없는 유랑극단이 그리스신화 중 ‘피라모스와 티스베’라는 비극적 사랑 이야기를 연극무대에 올리는 것이었다. 극단은 엉망진창이다. ‘벽’을 사이에 두고 금지된 사랑을 나누는 피라모스와 티스베의 사랑 이야기를 아주 슬프게 연출해야 하는데, ‘벽’을 표현할 장비가 없어서 신참 배우가 벽 역할을 대신한다. 그의 어색하고 서툰 ‘발연기’ 때문에 두 사람의 안타까운 사랑은 코믹하고 우스꽝스러운 촌극이 되어버리고 만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런 건 중요치 않다
나의 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행복한 사람이다
이런 생각에 빠져 한참 감정이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 여장 배우(샘 락웰)가 놀라운 연기를 펼치기 시작한다. 연인의 시체를 껴안고 티스베는 심장이 말라붙도록 통곡하기 시작한다. 어설프기 그지없던 주인공이 연극의 라스트신이라는 마지막 기회를 최고의 구원투수로 만든 것이다. 관객을 감동시키는 배우의 열연 때문에 결국 끝이 좋으면 다 좋아지는 멋진 기적이 완성되었다.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그건 중요치 않다. 그는 온전히 그 순간의 슬픔에만 집중했고 연기에 너무 몰입하여 억지스레 붙인 가발마저 벗어버리고 남자임을 숨길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지만 오히려 그 꾸밈없는 모습 때문에 난 울고 말았다. 온 마음을 바쳐 사랑했지만 이제 다시 그 웃음소리도 따뜻한 뺨도 만져볼 수 없는 죽은 연인을 향한 애절한 그리움, 당신 없는 세상에선 살아갈 의미를 찾지 못하는 여인의 간절함만이 무대를 온전히 장악한다. 오직 그 자리를 세상의 뜨거운 중심으로 만드는 순수함이 극단을 비웃던 모든 관객을 숨죽이게 만든다.
영화가 끝난 뒤 나는 자문자답해본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런 거 말고. 너 자신이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했니?” “물론이지!” “그럼 됐지, 뭘 더 바래?” 과연 그렇다. 나는 서툴고, 상처 많고, 결핍투성이지만, 내 일을 사랑한다. 그걸로 되었다. 당신도 그럴 것이다. 지금 당신의 열정을 가장 많이 쏟아붓고 있는 그 일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니까. 나는 지금 이 삶을 사랑한다. 이 삶이 비록 서툴고 결핍투성이일지라도.
정여울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