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전직 대통령이 처음으로 맞붙은 것은 1996년 15대 총선이었다. 서울 종로에 노 전 대통령은 민주당, 이 전 대통령은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했다. 결과는 이 전 대통령의 승리였고 당시 국민회의 이종찬 후보와의 단일화에 실패한 노 전 대통령은 3등에 머물렀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은 이듬해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고 결국 항소심에서 400만원 벌금형이 내려지자 의원직을 사퇴했다. 노 전 대통령은 98년에 실시된 종로 보궐선거에 재출마해 당선됐다.
친노 vs MB 진영 22년 ‘악연 정치’
2002년 노 대통령-MB 서울시장
행정수도·종부세 등 건건이 충돌
MB 대통령된 뒤 노 전 대통령 수사
문 대통령, 대선 때 “4대강 등 조사”
최근 MB 정부 실세 줄줄이 구속도
2007년 대선에서 이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에 이어 17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양측은 긴밀한 협의 과정을 거쳐 정권 교체기를 무난하게 넘기는 듯했다. 그러나 2008년 광우병 사태를 겪은 뒤 노 전 대통령과 측근들을 향한 MB정부의 수사가 본격화됐다.
시발점은 대통령기록물이었다. 대통령기록관에 이관한 자료를 노 전 대통령이 열람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이를 MB정부가 거절한 것이다. 노 전 대통령 측이 자료를 복사해 가자 MB정부는 이를 불법적인 기록 반출로 봤다.
2008년 7월엔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인 박연차 회장의 태광실업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시작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운명』에서 “정치보복의 시작은 참여정부 사람들에 대한 치졸한 뒷조사였다”며 “노 전 대통령은 ‘나와 친분 있는 많은 기업이, 심지어 내가 자주 가던 식당도 세무조사를 당했다’고 했다”고 적었다. 세무조사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이 박 회장 측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져 나와 이는 ‘박연차 게이트’에 대한 검찰 조사로 이어졌다.
검찰은 그해 12월 박 회장으로부터 640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노 전 대통령의 친형 노건평씨를 구속했다. 노 전 대통령도 이듬해 4월 검찰 소환조사를 받았다. 그러다 그해 5월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 사태가 발생했다. 노 전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서거로 검찰 수사는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다. 이 전 대통령은 같은 달 말 서울 경복궁 앞뜰에서 열린 노 전 대통령 영결식에 참석했다. 분향을 하는 이 전 대통령 내외를 향해 당시 백원우 민주당 의원이 “사죄하라. 어디서 분향을 하느냐. 정치적인 살인이다”고 소리치기도 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이 전 대통령에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
지난해 5월 집권한 문 대통령은 백 전 의원을 청와대 민정비서관에 임명했다. MB정부 시절 추진된 4대 강 사업에 대해선 정책감사를 지시했다. 대선후보 시절 문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의 4대 강 비리, 방산 비리, 자원외교 비리도 다시 조사해 부정축재 재산이 있으면 환수하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MB정부 실세들이 줄줄이 구속되면서 또 다른 정치보복 논란이 벌어지는 상황이다.
노무현-이명박 악연
1996년 15대 총선(종로)에 노무현·이명박 출마, 이명박 당선
1998년 종로 보궐선거에서 노무현 당선
2002년 6월 지방선거 서울시장에 이명박 당선
2002년 12월 대선 노무현 당선
2007년 12월 대선 이명박 당선
2008년 12월 노건평 구속
2009년 4월 노무현 전 대통령 검찰 소환조사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2018년 1월 ‘MB 집사’ 김백준 등 측근 잇단 구속
1998년 종로 보궐선거에서 노무현 당선
2002년 6월 지방선거 서울시장에 이명박 당선
2002년 12월 대선 노무현 당선
2007년 12월 대선 이명박 당선
2008년 12월 노건평 구속
2009년 4월 노무현 전 대통령 검찰 소환조사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2018년 1월 ‘MB 집사’ 김백준 등 측근 잇단 구속
위문희 기자 moonbright@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