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주변에선 “이번 논란 과정에서 여야 모두 국익보단 정략적 의도를 앞세워 상대방 흠집 내기에만 골몰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당초 현 정부의 ‘원전 건설 리베이트 내사설’까지 제기했던 자유한국당은 문제의 발단이 ‘비밀군사협정’으로 지목되자 머쓱한 표정이다. 자신들의 집권당 시절 벌어졌던 일인데 당시 관련자들에게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정치 공세부터 한 셈이다.
한국당서도 “외교사안엔 신중해야”
청와대 “소통 부족한 점 일부 인정”
민주당도 “이면합의”로 정쟁 키워
“MB 때 외교현실 감안을” 지적도
전문가 “칼둔 와서 논란 잠재웠다고
현 정부 외교실책 덮고 가면 안 돼”
그럼에도 당내에선 지도부가 충분한 사전 정보 없이 의혹만 부풀리려다가 궁지에 몰릴 뻔했다는 불만이 제기된다. 한 재선 의원은 “당 지도부에서 전임 정부가 맺은 MOU(양해각서) 내용까지 들춰지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한 것 같다”며 “이런 일이 생기면 국회 국방위·외교통일위·산업위 소속 위원들과 관계대책회의를 열어 대응 방안을 논의해야 하는데 제대로 된 정보 공유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의원도 “당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가며 차분하게 대응했으면 ‘결국 당신들 탓 아니냐’는 반격은 안 당했을 것”이라며 “정치 공세를 하더라도 외교안보 사안은 더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정쟁 확산에 일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추미애 대표는 10일 당 최고위에서 “UAE 원전 이면계약은 반드시 헌법의 질서에 따라 진행돼야 할 사안인데 이명박 정권은 끝내 국민을 속였다”며 “이제 와서 국익을 내세우지만 헌법 위에 존재하는 국익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11일 국회 외통위 간사인 김경협 의원은 “이면합의로 군사협정을 맺은 건 전형적인 외교 농단, 외교 적폐이며 위헌의 소지가 다분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청와대가 UAE와 이 문제를 봉합하기로 하면서 이면합의에 대한 공격은 힘을 받기 어렵게 됐다. 이 때문에 여권 내부에서도 이명박 정부가 UAE와 비밀협정을 맺을 수밖에 없었던 외교적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여권 관계자는 “UAE 비밀협정은 그냥 놔둬도 될 문제였는데 정부가 괜히 건드려 말썽만 일으켰다”고 말했다. 중앙일보는 우원식 원내대표에게 “만약 민주당이 집권당이었다면 대규모 원전 수주를 앞두고 왕정국가인 UAE가 그 대가로 비밀군사협정을 요청했을 때 어떤 입장을 취했겠느냐”고 물었다. 이에 우 원내대표는 “가정형 질문엔 답하지 않겠다”고 했다.
신율 명지대 정외과 교수는 “집권여당은 UAE 칼둔 행정청장이 화해 분위기를 만들고 돌아갔다고 현 정부의 외교 실책을 덮고 넘어가려 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청와대도 모호한 대응으로 논란을 키웠다. 야권이 의혹을 제기할 때마다 ‘파병군 격려→파트너십 강화→전 정부 때 소원해진 관계 복원→대통령 친서 전달 목적’ 등으로 매번 달리 설명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국익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청와대 입장에서 밝히고 싶어도 그러지 못한 부분이 많았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정치권과의 충분한 사전 소통이 부족했다는 점은 일부 인정할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김경희·송승환 기자 amato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