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시간의 선형적 질서를 해체한 타임슬립 혹은 타임워프 소재의 서사가 가장 대중적인 콘텐트인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고 있다. 한편에서는 그런 드라마들을 현실 도피적이라며 부정적으로 평하기도 하지만 시간의 선형적 질서를 해체함으로써 오히려 현재의 문제를 새롭게 환기시키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감춰진 진실을 밝혀내고 현재를 전보다 나은 것으로 구성해낸다는 판타지는, 시간의 흐름에 대한 전복적 상상력에서부터 출발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흥미롭다.
시간은 반드시 앞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미래맞이는 과거 잘 돌아보기에서 시작
지난 일은 모두 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거나, 보다 풍요로운 내일을 위해서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말자는 말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시절도 있었다. 아직도 과거의 상처 따위는 과감히 묻어버려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다. 지난 시대의 잘못을 밝혀내고 바로잡는 일에 대해서도 마치 드라마의 클리셰 장면을 보듯 이제 식상하다며 그만하면 됐지 않느냐 한다. 벤야민의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이 믿고 있는 것은 시간의 힘인 것 같다. 시간이 흐를수록 진실은 더 깊이 묻히고 잊혀져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시간과 역사에 대한 전복적 사유가 그래서 더 필요해지고 있다. 벤야민은 단순히 과거의 일을 떠올리는 것에 그치지 않는 ‘섬광과도 같은 혁명적 순간’이 중요하다고 했다. 과거가 현재로 불러내어져 현재와 융합되는 그 순간의 강렬한 에너지가 역사의 진보를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현재와 접속하는 순간 과거는 더 이상 흘러가 버린 시간이 아니라 현재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어제의 잘못을 바로잡는 일은 다름 아닌 ‘오늘의 일’이다. 매년 습관처럼 새로운 시간에 대한 기대로만 충만했던 새해를 이제 좀 다르게 맞이해 봐야겠다. 미래에 구애하듯 과거와도 소통하는 것, 그게 이 시간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법이다.
달력 앞에 선다. 아무리 디지털 시대라지만 새해 맞이는 달력을 바꿔 거는 일로 시작된다. 누구에게나 나이만큼의 지나간 달력 개수가 있다. 달력은 또 하나의 일기장, 역사인 셈이다. 2018년이 새 달력으로 시작됐다.
◆약력
성균관대 국문학 박사. 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 KBS·MBC 방송작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
고선희 방송작가·서울예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