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조대상 최영효
한라산
어디서 눈을 들어도 구름 속 저기 서 있다 오름이 오름을 받쳐 하늘 하나 보듬고 산다
딱 한 번 말을 뱉고는 입을 다문 저 사나이
아버지 돌팔매 맞고 가신지 하마 내 나이
휴화산 이름 하나로 참고 또 기다린다만
모슬포 돌개바람이 수선화 잠을 깨운다
구름의 높이에서 먼 북쪽 평원을 그려
살아온 시간의 멍에 누군들 기적 아니랴
가슴 속 불을 내리면 아플 일 하나도 없다
“하루 두 시간 운전하며 시상 메모
취재 위해 노량진 공시촌도 찾아”
딱 한 번 말을 뱉고는 입을 다문 저 사나이
아버지 돌팔매 맞고 가신지 하마 내 나이
휴화산 이름 하나로 참고 또 기다린다만
모슬포 돌개바람이 수선화 잠을 깨운다
구름의 높이에서 먼 북쪽 평원을 그려
살아온 시간의 멍에 누군들 기적 아니랴
가슴 속 불을 내리면 아플 일 하나도 없다
최영효씨는 반짝거리는 시인은 아니다. 오십 대 중반에 늦깎이 등단한 데다, ‘문단생활’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아서다. 대신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시조를 썼다. 그 결과 올해 중앙시조대상을 받게 됐다. 나이 들어 등단하면 생산성이 떨어진다든지, 문단의 조로(早老) 현상이 심각하다는 식의 우려는 적어도 최씨 앞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도대체 얼마나 열심히 쓰길래? 최씨는 “1년에 시조집 한 권 분량은 쓴다”고 했다. 적게 잡아 50수라고 해도 일주일에 한 편꼴로 쓰는 셈이다. 더구나 작품 중의 상당수가 길 위에서, 운전하는 틈틈이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의 생업은 화훼 도매업이다. “매일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진주 자택에서 꽃시장이 있는 김해까지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를 운전하는 도중에 시상(詩想)이 떠오를 때마다 메모한다”고 했다. “대한민국 시조시인 가운데 내가 가장 열심히 쓴다”는 얘기가 농담이 아니었다.
시조에 대한 최씨의 뒤늦은, 뜨거운 사랑은 내력이 있다. 그는 중앙대 국문과를 다니다 중퇴했다. 생활고 때문이다. 화훼업을 시작한 다음에도 한동안 신춘문예에 소설 응모를 했다. “등단 소식을 알리자 어머니가 ‘야야, 무당이 대잡는 것과 똑같네’라고 하시더라”고 했다. 무당에 신 내리듯, 운명처럼 젊은 날의 꿈을 이뤘다는 뜻이었다.
최씨는 시조는 음풍농월이 아니라고 했다. “쓰레기통을 뒤져 먹을 걸 찾는 사람들이 남아 있는 이상, 치열하게 시조를 써야 한다”고 했다. 지난 여름부터 가을까지 서울 노량진 공시촌을 여러 차례 찾은 것도 그래서다. 나긋나긋한 시조 말고, 청춘이 고통받는 현장을 시조로 쓰기 위해서였다.
문학장르로서, 시조의 특징을 묻자 첫사랑에 빗대 답했다. “첫사랑이 아름다운 것은 아픈 이별이 있기 때문, 다 말하지 못한, 다 말할 수 없는 말이 있기 때문, 정말 해야 할 말을 못 했기 때문이다.” 시조가 그렇다는 얘기다. 수상작 ‘한라산’도 그런 작품이다. 최씨가 그토록 열심히 시조를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영효
1946년 경남 함안 출생. 2000년 경남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조집 『무시로 저문 날에는 슬픔에도 기대어 서라』 『노다지라예』 『죽고 못 사는』. 김만중 시·시조 우수상, 형평지역문학상 등 수상.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