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웨인스타인)의 성 추문에서 촉발된 고발 캠페인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에 미 중진 현역의원이 가세했다. 캘리포니아주 4선인 린다 산체스 하원의원(48·캘리포니아)은 14일(현지시간) 의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몇 년 전 동료의원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산체스 의원은 가해자의 실명을 밝히진 않았지만 그가 현재도 의정활동 중인 현역의원이라고 덧붙였다.
산체스 하원의원 "현역 의원이 성추행" 실명은 안 밝혀
연방 하원 청문회 '성희롱 의원 2명 현재도 현역' 증언도
CNN 의회 조사선 "수년간 당했다" 여성들 폭로 잇따라
산체스 의원은 와인스틴의 잇단 성추행과 성희롱 사례를 거론하며 "비슷한 이야기가 있는 여성 수백 명을 볼 수 있다. 정형화된 양식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그는 성관계를 하자며 접근한 동료의원이 있었다고 AP통신에 폭로하기도 했다.
이날 하원 행정위원회에선 의회 내 성폭력 실태 관련 청문회가 열렸다. 앞서 의회 내 성희롱 방지 교육을 의무화하는 법안을 제출한 민주당 재키 스피어 하원의원(캘리포니아)은 이 자리에서 최소 2명의 현역의원이 자신의 보좌관을 성추행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자신도 과거 의회 직원으로 일하던 시절 수석급 직원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공화당 바버라 콤스톡(버지니아) 의원도 청문회 모두 발언에서 자신이 아는 사례를 들려줬다. 한 여성 보좌관이 남성의원 부름으로 자료를 갖다주러 갔더니 의원이 목욕 타월 차림으로 맞으며 신체 특정 부위를 보여주기도 했다는 것이다. 콤스톡 의원은 "그 일로 보좌관은 그만 뒀지만 해당 의원은 아직도 현역 재직 중"이라고 말해 청문회에 긴장감을 더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여성 의원은 CNN에 "남성 동료들로부터 지난 수년간 여러 차례에 걸쳐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했다"면서도 구체적 사례를 언급하기는 꺼렸다. 또 다른 전직 하원 보좌관은 "의회 내에 젊은 여성들이 워낙 많다 보니 남성들이 자제력을 보이지 않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CNN은 "상·하원 모두에서 성추행 및 위계에 의한 강압이 만연해 있다는 게 일관된 진술"이라면서 "의회 내 여성들이 미묘하든 명백하든 어쨌든 지속적인 성추행 환경에 노출된 셈"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권력을 손에 쥔 남성 의원과 지위 상승의 '사다리'를 타려는 여성 보좌진 사이에 모종의 '성적거래'도 암암리에 횡행하고 있다고 CNN은 덧붙였다.
최근 미국에선 앨라배마 주 상원의원 보궐선거에 나선 공화당 로이 무어 후보의 과거 10대 소녀 성추행 의혹이 불거지면서 정치인의 성폭력 실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미 정가에선 평소 성추행·성희롱 등으로 악명이 높은 상·하원 의원들의 이름이 담긴 '블랙리스트'도 떠돌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앞서 지난 주 상원은 의원과 보좌진의 성희롱 방지 교육 의무화를 위한 결의안을 채택했다. 헨리 왁스만(민주·캘리포니아) 전 하원 의원의 보좌관 출신 인사 주도로 벌어지는 의회 성폭력 근절 서명 운동엔 현재까지 1500여명이 동참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