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의 고향’ 스코틀랜드에서도 ‘PARK’ 씨 가문이 최고 명문가 중 하나다. 1860년 처음 열렸던 골프 대회인 ‘디오픈 챔피언십’ 우승자가 윌리 파크(PARK)다. 그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위성도시인 머셀버러에서 잔뼈가 굵은 프로다.
세계 1위 올라 '박씨 여제' 계승
LPGA 명예의 전당 한국인 2명
세리·인비 모두 박씨 가문의 딸
19세기 스코틀랜드 휩쓴 ‘PARK’
디오픈 초대 챔피언 윌리 파크
동생·아들 합쳐 7차례나 우승
그러자 윌리 파크는 공개 대결을 제안하는 신문 광고를 냈다. 그래도 응답이 없자 세인트앤드루스로 찾아갔다. 로버트슨의 골프 용품 가게 앞에서 샷을 하며 무력시위를 했다. 동네사람들은 두려워 떨었다. 윌리 파크의 샷이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 ‘총소리가 났다’고 전해진다.
그래도 로버트슨은 직접 나서지 않았다. 자신의 제자인 모리스 형제를 이기면 상대해 주겠다고 했다. 그가 내보낸 조지 모리스와 톰 모리스는 스승을 대신해 나갔다가 윌리 파크에게 차례로 대패를 당했다. 로버트슨은 그러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윌리 파크와 상대하지 않았다. 대신 모리스 형제와 그의 아들의 복수, 파크 가문의 재복수로 이어졌다. 초창기 골프는 모리스 가문과 파크 가문의 대결 구도였고, 첫 공식 골프 대회인 디 오픈 챔피언십이 탄생한 배경이 된다.
윌리 파크는 1860년 첫 디 오픈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것을 비롯해 63년, 66년, 75년에도 정상에 올랐다. 그의 동생 멍고 파크는 오랫동안 어부로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갔다가 불쑥 고향으로 돌아와 1874년 대회에서 우승했다. 윌리 파크의 아들인 파크 주니어는 1887년과 89년 우승자다. 세 사람이 합쳐 디 오픈 챔피언십에서 7차례 우승했다.
파크 가문 중 윌리 파크와 파크 주니어는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다. 윌리 파크 주니어는 골프 실력도 뛰어났지만 처음으로 골프 레슨 책을 냈고 미국 시카고 올림피아 필즈 등을 설계하면서 코스 설계의 기초를 닦은 인물로 꼽힌다. 그러나 멍고 파크는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지 못했다. 활동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았다.
박세리와 박인비의 명예의 전당 입회는 대단한 업적이다. LPGA 투어의 명예의 전당 문턱이 무척 높기 때문이다. 남들은 평생 한 번도 하기 어려운 다승 시즌을 5년 넘게 계속해야 한다. 21세기 들어 명예의 전당에 간 선수는 소렌스탐, 카리 웹(호주), 박세리, 박인비 뿐이다. 로레나 오초아(멕시코)는 10년을 채우지 못해 LPGA 명예의 전당에 가지 못했다.
명예의 전당에는 선수들의 얼굴이 동판에 새겨져 있다. 박성현이 박세리·박인비와 함께 스코틀랜드의 PARK를 능가하는 최고 가문의 영광을 이루기를 바란다.
성호준 골프팀장 sung.hoj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