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전 마른 체형의 허태원(65)씨가 가래 끓는 소리와 함께 힘겹게 입을 열었다. 말을 마친 후에는 종종 가벼운 기침을 했다. 질문에 답하던 도중 갑자기 생각이 났는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냈다. 호흡이 가쁠 때 쓰는 ‘기관지 확장제’였다. 그는 "두어번 뿌리면 숨쉬기 편해져요. 더 심해지면 가방에 휴대용 산소가 있는데 그걸 들고 다니면서 사용하죠"라고 말했다.
증언형 금연광고에 출연한 만성폐쇄성폐질환 환자 허태원(65)씨가 30일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그가 오른손에 들고 있는 것은 기관지 확장제다. 평소 가지고 다니다가 숨쉬기 힘들 때 사용한다. [사진 보건복지부]
만성 폐질환 65세 허태원씨, 31일부터 금연 광고 출연
연신 기침하면서 "오늘 당장 담배 끊으세요" 호소
40년 흡연..일은 커녕 계단 하나 오르기도 벅차
수차례 시도에도 '실패'..."담배 못 끊은 게 가장 후회"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지 병원에 가면 늦어요"
이런 허씨의 얼굴과 목소리가 31일부터 TV·라디오로 전국에 방송된다. 흡연 피해자가 직접 출연해서 담배의 폐해를 알리는 '증언형' 금연광고를 통해서다. TV 광고 속 그는 환자복 차림으로 연신 기침을 해대며 "폐가 망가져 버렸거든요. 끊을 수 있을 때 오늘 당장 끊으세요"라고 호소한다. 라디오 광고에선 육성으로 "저처럼 병에 걸리고 나서야 끊지 마세요"라고 말한다. 금연의 필요성은 알지만 선뜻 담배 끊기에 나서지 못 하는 흡연자들의 동참을 이끌어내기 위한 취지다.
허태원씨가 나온 증언형 금연광고 포스터. [사진 보건복지부]
이같은 증언형 금연광고는 이번이 세번째다. 고인이 된 코미디언 이주일씨가 2002년 출연한 것이 처음이고, 지난해엔 구강암 판정을 받은 임모(55)씨가 익명으로 나섰다. 폐암 투병 중이던 이씨가 "담배 맛있습니까? 그거 독약입니다"라고 말한 광고는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이 광고를 봤다는 허씨는 "그냥 광고려니 하고 지나쳤지 건강에 대해선 딱히 생각하지 않았다. (알았다면) 이 정도는 안 됐겠죠"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가 나온 광고를) 봤는데 얼떨떨하다. 광고는 처음 해 본 거라서"라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허씨도 그동안 담배를 끊으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다. 첫 딸을 낳아서, 신년 다짐으로, 가족들이 싫어해서…. 다양한 계기로 짧은 금연에 성공했지만 다시 담배를 입에 물었다. 그는 "젊었을 때는 그냥 담배만 피웠죠. 병 걸린다는 생각은 안 하고"라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하루에 1갑 이상 담배를 피우다보니 기침과 가래가 끊이지 않았지만 동네 병원에서 말한 것처럼 '천식'인 줄만 알았다. 폐가 갈수록 나빠지고 회복이 불가능한 COPD라는 질환이 있는지도 잘 몰랐다. 병세가 심해진 2014년에야 COPD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비로소 담배와 작별했다. "일찌감치 담배 못 끊은게 가장 후회돼요. 무지했던 거죠. 진작 끊었으면 이렇게까지 망가지진 않았을 건데요."
담배를 오래 피우면 폐 기능이 저하되는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 허태원씨도 40년 간 이어진 흡연으로 COPD에 걸렸다. [중앙포토]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