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주일간(4월 30일~5월 6일) 저녁 시간대 방송되는 지상파 예능 28편(음악방송, 연예뉴스 제외)을 살펴봤습니다. 그랬더니 28편 중 25편은 시청률 10%를 넘기지 못했습니다. 시청률 5%를 넘지 못한 예능도 10편이었습니다. 주말 예능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12편 중 8편이 시청률 5% 아래였습니다.
물론 지상파 채널의 독점적 지위가 예전 같지 않은 건 사실입니다. 방송사 내부에선 평일 예능 시청률 10% 이상이면 '대박'이라고 평가한다고 합니다. 스마트폰 보급으로 TV로 예능을 보는 이가 많이 줄었고, 채널(JTBC와 tvN 등)이 다양해지니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단지 채널이 많아지고, 스마트폰이 보급돼 시청률이 떨어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지상파, 인력 유출과 안정지상주의 때문에 도전 사라져
지상파와 달리 유료방송, 새로운 예능 줄줄이 대기 중
전문가 "새로운 시도해야 콘텐츠 발전과 생존에 유리"
◇더 큰 문제는 콘텐트 질 저하
물론 지상파가 새로운 트렌드를 전혀 만들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리얼버라이어티의 첫 깃발을 꽂았던 것도 지상파였습니다(물론 그때는 JTBC가 없었고, tvN도 지금 같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성공한 포맷은 '단물이 빠질 때'까지 방송합니다. 대표적인 게 무한도전이라고 할 수 있겠죠. 2006년 리얼버라이어티를 표방하며 한때 30% 가까운 시청률(TNMS 기준으로는 30.4%가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던 무한도전이 이제는 시청률 10%를 넘기기 힘듭니다. 팬들로부터 '시즌제' 요구가 지속적으로 나오는 데도 7주 휴식 후 무한도전은 여전히 강행군입니다. 한 MBC PD는 "한 프로그램을 10년 넘게 하는 PD가 어디 있느냐"며 "야구로 치면 선발투수가 10게임 연속 9회말까지 던지고 있는 것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박수 칠 때 못 떠나는 지상파 예능
유료방송은 확실히 다릅니다. 곧 방송 예정인 예능 프로그램을 살펴볼까요? 북유럽 국가의 교육 현장을 집적 찾아 살펴보는 '수업을 바꿔라(tvN·18일 첫방송)', 인문학 전문가들과 잡다한 지식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알쓸신잡'(tvN·편성미정), 연예인이 운영하는 민박에 일반인이 머무는 관찰예능 '효리네 민박(JTBC·6월 첫방송)'. 기존의 아이디어와 포맷과는 달라 보입니다.
왜 지상파는 도전하지 못할까요. 전문가들은 지상파의 '안정지상주의'를 지적합니다. 한때 MBC에서 다큐 작가로 일했던 김미라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는 "경쟁이 치열해지면 새로운 시도를 통해 시청자들을 끌어오려 노력할 것 같지만 지상파들은 반대로 가고 있다"며 "아이디어나 포맷으로 승부하는 대신 안정적인 포맷에 대중들이 선호하는 출연자들을 불러 쉽게 시청률을 확보하려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유료방송PD로 있던 한 지상파 예능 PD의 얘기는 더 와닿습니다. "유료방송에 있을 때는 하고 싶은 기획을 했고, 망해도 티가 안 났다. 그런데 지상파는 기본 시청층이 있다는 인식 때문에 망하면 정말 압박을 많이 받는다. 그러니 들어본 무기만 들고 해본 싸움만 하게 된다."
2011년부터 시작된 스타 PD들의 유료방송 이적도 지상파의 역량을 낮춰놓았고, 여기에 지상파의 구조적 문제와 조직문화까지 더해져 변화에 저항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공희정 방송평론가는 "지상파는 프로그램 하나 결정하는 데에도 거쳐야 할 '결재라인'이 너무 많다"며 "유료방송은 예능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호응이 좋으면 시즌2로 돌아오는 것처럼 짧게 치고 빠지며 트렌드를 반영하는데 지금 지상파의 의사결정 구조로는 그게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한 지상파 PD는 "'멘탈붕괴'는 써도 '멘붕'은 자막에 못 쓰게 하는 경우도 있다"며 "지상파에서 '고등래퍼' 같은 예능 기획안을 냈을 때 그게 통과가 되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조직 문화와 구조적 한계, 극복할 수 있을까
딱딱한 조직문화와 복잡한 의사결정 과정, 그리고 당장 눈 앞의 광고 수익이 떨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이겨내고, 새로운 예능에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지상파를 앞으로는 볼 수 있을까요.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