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단은 당이 지난 12일 공개한 대선후보 경선 룰이었다. 역대 처음으로 예비경선(여론조사 컷오프)을 통해 3명으로 후보를 추리고, 본 경선으로 나눠서 치르기로 해놓고 예선 없이 본선에 나올 수 있는 ‘직행 티켓’까지 만든 것이 화근이 됐다. 지도부가 합의하면 예비경선을 거치지 않은 후보도 본 경선에 나올 수 있는 특례 조항을 만든 것이다. 사실상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출마를 감안한 무리한 결정이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100% 여론조사, 홍준표 견제용 의심
한국당 대선 경선룰에 반발 커져
함께 회견장에 나온 김진 전 논설위원도 “당이 특례 규정을 만들어 공정성을 파괴했다”며 “새치기로 당선된 후보는 대통령이 되면 국정 운영도 새치기나 편법으로 할 것이냐”고 되물었다. 이에 더해 한국당은 100% 여론조사 방식으로 대선후보를 선출하기로 했다. 본 경선에서 당원 투표 50%와 국민 여론조사 50%로 하겠다고 했으나 당원 투표 역시 전화여론조사로 한다.
예비경선 또한 당원 및 국민여론조사로 결정한다. 이 전 최고위원은 통화에서 “100% 전화로 대선후보를 뽑는 정당이 세상에 어딨느냐”고 반문했다. 이뿐 아니다. 한국당은 2012년 대선 경선 때 2억5000만원이던 후보 기탁금을 4억원으로 늘렸다. 예비 경선 후보는 1억원, 본 경선에 나서게 되면 3억원을 추가로 내야 한다. 당은 산출 근거도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다.
이른바 ‘황교안 특례 규정’과 관련, 당내에선 홍준표 경남지사에 대한 당 지도부의 견제라는 해석도 나온다.
경선룰은 친박계 김광림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경선관리위원회에서 만들어 인명진 비상대책위가 추인했다. 당내 중진급 의원은 “일부 친박계가 황 대행을 설득할 수 있는 시간을 벌고 관계가 불편한 홍준표 지사의 출마를 막기 위해 다목적 포석을 한 게 아니냐”고 의심했다.
이날 정우택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어려운 여건과 지지율 등을 감안해 외부에서 더 사람을 영입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놔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석연찮은 경선룰에 대한 설명으로는 궁색하다. 당이 배출한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과 비박계의 탈당으로 한국당은 이미 난파선이다.
민주적이고 정당한 프로세스는 보수정당의 가장 핵심적인 가치여야 한다. 이 와중에 한국당은 누군가에겐 특례를, 누군가에겐 기탁금만 받겠다는 100% 전화조사 경선룰을 만들었다. 이미 지난해 총선에서도 민주적 프로세스를 지키지 못하고, 극심한 공천파동을 겪어놓고도 악습을 쉬 씻어내지 못하고 있다.
박성훈 기자 park.seongh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