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리포트
그러나 이번 금융위기 이후에는 수요 측 요인도 저성장을 장기간 지속시킬 수 있다는 견해가 주목을 받고 있다. 대공황 이후 처음으로 은행위기, 신용경색, 주택·주식가격 폭락이 동시 다발적으로 나타난 대규모 위기였다. 이로 인해 경기 침체가 전 세계로 확산한 데다 위기로 인한 충격은 총수요 측면에서도 여러 경로를 통해 생산요소나 생산성에 장기간 부정적 영향을 주었다.
저출산·고령화 성장잠재력 좀먹어
한국 경제 잠재성장률 3%대 하락
창업시장 신규 진입 문턱 낮추고
혁신기술 가진 중소기업 지원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 분야
신성장동력 발굴에 사활 걸어야
주요 요인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먼저 저출산·고령화 추세는 총수요와 총공급 양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장기간에 걸쳐 성장잠재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한국의 2015년 합계출산율은 1.2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거의 꼴찌에 가까운 수준을 기록했다. 인구 고령화도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노후 부담이 급속히 증가하는 한편 평생 기대소득이 정체되면서 사람들은 현재 소비를 꺼리고 미래를 대비해 저축을 확대하고 있다. 아울러 인구 고령화는 노동공급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으로 가계부채 부담이 꾸준히 증가하면서 소비를 위축시키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가계부채가 축소된 주요 선진국과 달리 한국에선 가계부채가 증가세를 지속했다. 소득 증가율이 가계부채 증가율에 미치지 못하면서 원리금 상환부담이 높아졌고 이는 특히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소비를 약화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투자는 경제 성숙화, 대내외 불확실성 증가, 투자비용 상승 등으로 둔화한 것으로 보인다. 대내외 경제여건의 불확실성 확대는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한국 기업의 설비 투자를 위축시켰다. 인건비 등 투자 비용이 경쟁국에 비해 높아짐에 따라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의 외국인직접투자가 정체되고 있는 반면 해외직접투자는 크게 늘어났다.
총요소생산성 둔화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잠재성장률 하락의 주요 요인이었다. 노동, 자본 등 요소 공급이 둔화된 가운데 노동은 서비스 부문으로, 자본은 제조업 부문으로 집중되면서 전체 생산성이 약화됐다. 더욱이 노동이 고부가가치 산업에서 저부가가치 산업으로 이동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노동생산성이 하락하면서 경제양극화도 심화될 우려가 있다.
이와 같은 문제점들은 통화·재정정책의 운용만으로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다는 데 어려움이 있다. 경제체질 강화를 위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사회·경제 구조개혁의 필요성이 강조되는 것은 이러한 연유이다.
산업구조 조정, 노동 및 재화·서비스시장 개혁, 기술혁신 등을 통해 생산성을 높여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적극적인 구조조정 추진으로 기업 진입·퇴출의 유연화를 도모해야 한다. 특히 창업 실패의 비용을 낮춰 혁신적 중소 신생기업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정책은 산업 전반의 생산성을 높일 것이다.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 정착, 최저임금제 준수율 제고 등으로 노동시장 관련 법률의 실효성을 높이고 노사정간 협의를 통해 노동시장 유연화 법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원활한 신기술 도입을 위해 법률 제도를 선제적으로 정비하고 구체적인 규제완화 로드맵을 작성하는 한편 공정한 기술거래 문화를 구축하고 지식집약적 서비스업 지원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기술 혁신을 위해 기업의 투자 환경을 개선하는 한편 긴 안목으로 연구개발 활동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 제4차 산업혁명 분야에서 신성장동력을 발굴하는 데 한층 노력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장기적인 시계에서 소비의 원천인 가계부문의 소득을 골고루 증대시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근로자의 임금·고용 조건의 불균형 완화, 소득 재분배 정책, 사회 안전망 확충 등으로 가계부문의 안정적인 소득·소비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김용복 한국은행 조사국 모형개발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