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취재일기] 참을 수 없는 말의 가벼움 ‘불임정당’

중앙일보

입력 2017.02.08 01:00

수정 2017.02.08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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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미
정치부 기자

‘도대체 누가 불편해야 하는가.’ 요즘 새누리당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이 ‘불임정당’이라는 단어를 꺼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인 위원장은 지난 6일 원유철 의원의 대선출마 행사장으로 가며 “애 낳는 데 간다. 하도 불임이라고 해서 출산하는 데 간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선 대선후보를 내지 못하는 당을 ‘불임정당’이라 부르는 구습이 있다. 여기에서 모티브를 얻은 인 위원장이 대선후보를 ‘애’로, 대선 출마를 ‘출산’이라 표현한 것이다. 그는 같은 날 열린 안상수 의원 출판기념회에서도 “새누리당이 불임정당이라 놀림을 받았지만 갑자기 애를 셋(이인제·원유철·안상수)이나 낳게 됐다”며 “7형제, 8형제는 문제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세 후보가 출마를 선언했고, 앞으로도 선언이 이어질 것이란 의미였다.

인 위원장의 ‘불임’ 표현은 이날만이 아니었다. 그는 지난달 24일 부산에서 열린 당 행사에서 “불임정당이라 하는데 제가 산부인과병원 이사장이다. 요즘은 인공수정도 잘된다” “예쁜 늦둥이 후보를 낼 것. 안 되면 양자를 들이면 된다”고 했었다. 이 표현이 불편한 것은 불임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표현이 아닌 데다 애가 없는 부부들에겐 상처가 될 수 있어서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정부는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06~2010년)에서 ‘불임(不姙)’이라는 표현 대신 ‘난임(難姙)부부 지원’이라는 표현을 썼다. 애를 못 낳는다는 부정적 표현을 피하고 애를 낳기 어렵다(노력하면 낳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 이런 맥락이라면 정치권에서 대선후보도 못 내는 정당을 불임이라 표현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인 위원장의 습관적인 ‘가벼운 농담’ 중에는 성차별적으로 들릴 수 있는 발언들도 있다. “우리 당을 잘 갖춰놓으면 자기가 러브콜하겠지. 예쁜 처녀가 동네 총각 골라잡듯…”(1월 17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에게 “러브콜 할 생각이 없다”며), “내가 거절을 못해서 많이 고생했다. 내가 여자로 태어났다면 큰일 날 뻔했다”(1월 11일, 위원장직 수락 과정을 설명하며) 등이다. 최근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을 소재로 한 풍자 누드화 논란을 일으킨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대한 규탄대회를 열고 있다. “여성 대통령에 대한 비하가 풍자로 용인할 수위를 넘어섰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인 위원장의 아슬아슬한 발언으로 불편함을 느끼는 대상 역시 여성들이다. 당의 적폐를 청산하겠다는 인 위원장은 자신의 발언에는 문제가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 최순실 사태를 겪으며 당이 쪼개지는 위기상황에 투입된 비대위원장의 부적절한 발언은 당을 더 위태로운 지경에 빠트릴 수 있다. 지금 말 한마디, 처신 하나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불편함은 인 위원장의 몫이 돼야 한다.


박유미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