퀄컴은 이 분야에서 ‘표준필수특허(SAP)’를 가지고 있다. 다른 기업들이 AP 등을 따로 만들 수는 있어도 스냅드래곤과 같은 제품을 만들려면 퀄컴의 특허를 사야 한다. 삼성전자가 자체 개발한 모뎀칩셋을 자사 스마트폰에 넣으려면 퀄컴으로부터 라이선스(특허 사용권)를 사와야 하는 구조다. 제조와 특허 모두 ‘절대 갑’의 지위를 가져서 가능한 일이다.
휴대폰·기지국 연결 표준특허 악용
마음대로 제조사 골라 라이선스 줘
국내 유망 중기, 기술 못 얻어 퇴출
한국에서 7년간 38조 매출 올려
퀄컴 “한미FTA 위반” 강력 반발
소송전·통상마찰로 확대될 우려
삼성전자는 퀄컴의 기술을 활용해 모뎀칩셋을 만들지만 아무데나 팔 수 없다. 퀄컴이 사업 판매권을 제약했기 때문이다. 퀄컴은 휴대전화 제조사로부터 휴대전화 단말기 가격의 약 5%를 특허사용료로 받았다.
신영선 공정위 사무처장은 “모뎀칩셋 시장은 퀄컴이 좌지우지한 폐쇄 생태계였다”며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시장에서 경쟁이 제한된 것을 고려해 과징금 부과 등의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퀄컴이 이런 부당행위로 2009년부터 7년간 한국에서만 약 38조원의 매출을 올렸다고 추산했다. 과징금 규모는 매출액 대비 2.7%로 정했다. 이런 퀄컴의 특허를 활용한 사업 모델의 위법성 여부에 대해 2000년대 초부터 전 세계 정보기술(IT) 업계에서 문제 제기가 있었다. 중국 경쟁당국은 퀄컴이 중국 스마트폰 제조업체에 모뎀칩셋 특허를 제공할 때 다른 특허까지 끼워팔기한 사실을 적발하고 지난해 2월 퀄컴에 9억7500만 달러(약 1조640억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미국·대만 경쟁당국도 퀄컴의 특허남용 혐의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퀄컴 측은 공정위의 결정에 강하게 반발해 향후 ‘법정 공방’을 예고했다. 퀄컴은 조사 과정에서 사건 자료, 핵심 증인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다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규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이 사안을 한·미 통상 문제로 확대하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돈 로젠버그 퀄컴 총괄부사장 및 법무총괄은 이날 성명에서 “전 세계에서 수십 년간 이어진 라이선스 관행을 무너뜨린 전례 없는 결정”이라고 밝혔다.
세종=하남현 기자 ha.namh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