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목
동아대 석좌교수
지속가능경영재단 이사장
현재 400여 개 대기업만이 회원인 전경련이 헤리티지재단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대기업 대변인’으로 알려져 있는 전경련이 헤리티지재단과 같이 수십만 명의 자발적 기부자를 확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이에 더해 좌우세력 간 이념대결이 치열한 상황에서 전경련이 보수적 가치관과 보수 정치세력만의 후원자로 자리매김하는 것 역시 전경련의 대 국민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전경련이 영국의 BITC(Business in the Community)를 벤치마킹할 것을 권하고 싶다.
‘헤리티지 모델’ 모색한다지만
보수 싱크탱크화 실현 어려워
기업의 사회적 책임 추구하는
영국 BITC 벤치마킹이 바람직
하워드 보웬이 54년 처음으로 제기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문제는 국제표준화기구(ISO)가 2010년 ‘ISO26000’을 발표함으로써 이제 기업활동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에 더해 2011년에는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가 기업 활동의 경제적 가치와 동시에 사회적 가치를 제고하자는 ‘공유가치 창출(CSV: Creating Shared Value)’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CSR과 CSV는 국제무대에선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기업들이 추구해야 하는 새로운 시대적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이윤 극대화에만 매달리는 경영 방식으로는 지속 가능성을 보장받기 어려워졌다.
지금 대내외 정치·경제 여건은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제1차 산업혁명 이후 세계무대에서 자유화와 개방화를 선도해 온 영국이 국민투표를 통해 EU를 탈퇴했고, 미국에서는 미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주장하는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따라서 80년 이후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대세를 이루어 온 ‘신자유주의’ 경제논리가 지배하는 이른바 ‘자본주의 3.0 시대’ 역시 종말을 고하고, 이제부터는 자본주의의 ‘지속가능성’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는 ‘자본주의 4.0 시대’가 새롭게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역시 경기 부진이 지속되고 양극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대통령 탄핵과 대선이라는 정치적 변혁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정치·사회적으로 부상될 과제는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로 예상된다. 갈림길에 선 전경련의 역할을 영국의 BITC와 같은 방향으로 재설정하는 방안은 ‘정체성 위기’에 직면한 전경련과 우리 대기업들이 기업의 존재이유와 본질을 국민과 소통할 수 있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서상목 동아대 석좌교수·지속가능경영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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