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중앙포토]
1957년 칠천량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왜군에 대패한 뒤, 삼도 수군통제사로 복귀한 이순신 장군에게 선조는 “수군을 폐하고 육군으로 통합하라”고 명한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아직 12척의 배가 남았다”며 명량해전을 준비한다. 바다를 내어주면 조선이 망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 주도 해운 구조조정 실패
세계 6위 해운강국에서 변방으로 몰락…
해운업계, “정부가 바다를 버렸다”
금융 당국은 또 해운업 지원 과정에서 단기 금융 지원에 치중했다. 정부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에 총 2조6868억원을 지원했다. 하지만 세부 항목을 뜯어보면 시장안정증권 발행(현대상선 1조432억원, 한진해운 8387억원), 운영자금 대출마감 기한 연장(현대상선 5192억원, 한진해운 2857억원)으로 구분할 수 있다. 모두 단기 유동성 지원이라는 뜻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단기 유동성 지원은 금융지원을 비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경향이 있다. 즉, 단기 유동성 지원책은 기업의 체질을 바꾸거나 근본적으로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 구조조정을 오히려 늦추는 효과가 있다는 뜻이다. 해운업 구조조정 실효성이 떨어진 배경이다.
이에 비해 조선업 지원은 달랐다. 정부는 대우조선해양에는 ‘폭포수(4조2000억원)’를 쏟아 부었다. 특히 KDB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은 대우조선해양에 단기 유동성 지원과 더불어 장기적인 지원 방안도 병행했다. 4조2000억원 중 2조 원은 유상증자나 출자전환으로 투입됐다. 김태일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해운정책연구실장은 “한진해운에 빌려준 돈은 나중에 이자를 붙여 갚으라는 단기 유동성 지원 방식이었다”며 “반면 (대우조선해양에 지원한) 유상증자·출자전환은 산업은행 자본을 투입해 기업의 부채를 탕감해주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그토록 엄격했던 금융 당국이 이와 같은 지원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다. 대우조선해양의 자구계획안(5조2934억원) 이행률은 11월 기준 28%(1조5168억원)였다.
한진해운은 어땠을까. 금융감독원이 김기식 전 더불어민주당(현 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했던 ‘한진해운 상황보고’에 따르면, 한진해운은 자산을 팔고 사업을 매각해 자구계획 목표(2조 4683억원)의 109%를 자체 달성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경영 정상화 의지가 미약했다’고 평가했다.
호미로 막을 일 가래로 막은 정부
이에 비해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등 양대 해운사는 순수 민간기업이다. 구조조정이 한창이던 지난해 연말 기준 한진해운 최대주주는 대한항공(33.23%)이었고, 현대상선은 현대엘리베이터(17.96%)였다. 김태일 실장은 “국책은행이 민간 기업을 지원한다는 본연의 기능을 충분히 수행했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결과적으로 정부는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고 있다. 정부가 최근 발표한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해운산업에 총 6조5000억원 규모의 금융 지원을 한다. 법정관리 직전 삼일회계법인 실사 결과 채권단이 파악한 2017년까지의 한진해운의 유동성 부족분은 최대 1조2000억원 수준이었다.
상황이 이런 데도 구조조정 책임자들은 책임 회피에 급급하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한진해운 처리문제는 해운업 구조조정 원칙에 따른 것”이라고 했고, 유일호 부총리는 “한진해운이 자구 노력부터 어긋나고 용선료 협상도 제대로 되지 않아 원칙에 따라 처리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나아가 구조조정 책임론을 제기하는 이들에게 재갈을 물리고 있다. 12일 현대상선의 해운동맹 가입에 대해 묻자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정부로부터 ‘입단속 하라’는 경고를 받았다”며 “실명 인터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사이 그나마 남은 해운업 경쟁력은 더 훼손되고 있다. 현대상선이 해운동맹 2M과 체결한 ‘전략적 협력’이 대표적이다. 2M과 현대상선은 다른 선사 참여가 불가능한 배타적 계약을 맺었다. 세계 1·2위 선사인 2M은 이미 충분한 규모의 선박을 보유하고 있어 굳이 타 선사와 협력할 필요가 없지만, 조만간 글로벌 원양선사 중 꼴찌가 되는 현대상선은 배타적 계약이라도 맺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해운업 전문가들은 “정부가 지원 조건의 원칙으로 내세운 ‘해운동맹 가입’이라는 구색을 맞추려고 무리하게 배타적 계약이라는 조항까지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