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오후 충북 음성군 맹동면 용촌리에서 만난 오리 사육 농장주 강모(38)씨는 정부의 허술한 방역 대책에 분통을 터뜨리며 이같이 말했다.
음성 농장주 “소독약 실효성 있나”
최대 닭 산지 포천 지역경제 휘청
광주 오리탕집 “손님 한 명도 없어”
병아리를 키우는 박모(60)씨와 아내(59)는 “AI가 터지기 사흘 전 육계 가공업체와 위탁생산 계약을 맺고 병아리를 들였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박씨는 AI 최초 발생 농가에서 250m 떨어진 곳에서 병아리 14만 마리를 키우다 모두 살처분했다. AI 발생 농가 500m 이내는 살처분 대상이다. 박씨는 “지난 9월 사료 자동화시스템 등을 갖춘 축사 8개 동을 짓기 위해 9억9000만원을 금융권에서 대출받았다”며 “빚을 어떻게 갚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그는 “AI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앞으로 입식금지 기간과 출하 해제까지 6개월가량 아무 소득 없이 버틸 일이 막막하다”고 했다.
AI가 역대 최고 속도로 퍼지면서 살처분된 가금류는 1200만 마리를 넘어서 전국의 닭·오리 사육 농가들은 초토화되고 있다. 축산 농민들은 탄식하며 대책을 호소하고 있다.
A축산 관계자는 “AI 발생 후 살처분 과정에서 개당 1760만원이나 하는 대형 매몰용 통 14개를 어쩔 수 없이 사야 한다. 이 판국에 매몰용 통 값만 2억4000여만원을 써야 할 형편”이라고 했다. 그는 “땅을 판 뒤 비닐을 깔고 매몰하는 방법도 괜찮은데 통을 사야 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소비자의 불안감이 깊어지면서 닭·오리 음식점도 타격이 크다. 20여 개의 오리탕 식당이 모여 있는 광주광역시 유동 오리탕거리는 요즘 썰렁하다. 지난 13일 점심시간. 2곳을 제외한 대부분의 오리탕 식당은 테이블이 텅 비어 있었다.
이곳에서 40년 가까이 장사하고 있다는 서춘화(67·여)씨는 “어제는 점심 때 반마리(2만8000원)를 팔았는데 그나마 오늘 점심엔 손님 하나 없다”며 “AI 때문에 닭·오리뿐 아니라 상인들까지 죽게 생겼다”고 했다. 그는 “AI를 막을 수 있을 것처럼 자신만만했던 정부는 대체 뭘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같은 날 오후 광주 지역 최대 전통시장인 양동시장 내 닭집거리도 개점휴업 상태였다.
정부가 전통시장에서의 산 닭 판매를 금지하면서 닭장은 비어 있었다. 오리가 일부 진열돼 있었지만 찾는 사람은 없었다. 상인 박용복(71)씨는 “사육농가는 매몰 처분하면 보상이라도 받지만 우리 상인들은 아무것도 없다”며 “혹시라도 손님이 있을까 가게 문은 열고 있지만 찾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포천·음성·광주광역시=전익진·최종권·김호 기자 ijje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