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섭
서울대 교수
국가리더십센터 소장
사정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은 이유는 대통령과 민정수석이 민정(民情)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이를 왜곡했기 때문이다. 옛날부터 위정자는 민심을 살피는 것(察民情)을 통치의 기본으로 삼았다. 특히 현명한 군주는 여러 사람의 지려(智慮)가 한 사람의 뛰어난 성인보다 낫다는 것을 알았다. 즉 필부(匹夫) 필부(匹婦)는 아는 것이 없는 것 같고 그래서 한 사람씩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리석어 보이지만 이들이 모여서 내는 하나의 목소리는 성인의 이야기보다 낫고 하늘의 목소리임을 알았다. 그래서 세종대왕은 여론조사라는 것이 없던 시절에도 공론(公論)으로 통치를 한 것이다. 또한 현명한 군주는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배를 엎을 수도 있는 것처럼 군주가 백성의 마음을 얻으면 굳건해지지만 잃으면 위태로워지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백성의 마음을 따르려고 했지 감히 백성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따르도록 하지 않았다. 특히 백성이 가지는 원한과 분노의 감정은 그 단서가 매우 미미하지만 그것이 극에 이르게 되면 제어할 수 없기 때문에, 임금이 백성을 대할 때는 썩은 새끼줄로 여섯 마리 말을 몰 듯 조심했고 백성의 사정과 형편을 살피는 것을 제일의 과제로 삼았다.
오늘날 민주공화국에서는 왕조 시대보다 이러한 민정의 중요성이 훨씬 더 크기 때문에 대통령실에 민정수석을 두고 검찰·경찰·국세청 등 사정기관을 총괄하면서 이들로부터 올라오는 민심을 대통령에게 온전히 전달하는 역할을 부여한 것이다. 그런데 검사 출신 민정수석이 그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민심을 전달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왜곡해 국정 문란과 파탄을 초래하게 했다. 사정기관들이 국정을 정의롭게 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비선 실세의 사적 이익 추구를 권력을 이용해 도와준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정윤회 사건 때 검찰이 이를 제대로만 수사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참혹한 상황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검찰이 정권 초부터 제 역할을 다했더라면 정윤회 사건도 발생하지 않아서 검찰도 살고, 박근혜 대통령도 살고, 나라도 살았을 터이다. 민정의 중요성과 무서움을 몰랐던 대통령과 이를 왜곡한 검찰 때문에 나라가 거의 결딴나고 있다. 민정수석과 검찰이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도록 전면적으로 개혁하지 않는 한 5년마다 반복되는 국가의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김 병 섭
서울대 교수
국가리더십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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