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이 먼저 맛을 봤다. 뉴욕 증시의 S&P500 지수가 9거래일 연속 하락했다. 1980년 12월 이래 겪어 보지 못한 장기 하락 행진이다. 4일(현지시간)엔 고용시장에서 청신호가 나왔는데도 주가 하락을 막지 못했다. ‘신규 일자리 창출 16만1000개, 실업률 4.9%, 시간당 임금 2.8% 상승(전년 동월 대비)’은 콧노래가 나올 법한 실적이다. 하지만 대선 리스크 앞에선 소용없었다.
S&P500, 36년 만에 9거래일 하락
고용지표 등 나아졌지만 무용지물
트럼프 되면 증시 13% 폭락 예측
원화가치 1180원대 하락 전망도
트럼프 승리 후 증시에 대한 일반적 예상은 주가 폭락이다. S&P500 지수가 13%까지 빠질 것이란 대형 투자은행(IB) 바클레이스의 예측이 가장 암울하다. 미국 증시 급락은 세계 증시 하락에 방아쇠를 당길 수 있다. 씨티그룹은 MSCI 신흥시장 지수가 즉각 최소 10%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글로벌 통화시장엔 격랑이 예고돼 있다. 우선 달러화 가치는 급락이 예상된다. 미국 경제의 항로에 대한 불확실성이 1차적 이유다. 브렉시트 때 영국 파운드화 폭락과 닮은꼴이다. 여기에 연방준비제도(Fed) 변수가 가세한다. 재닛 옐런의 Fed는 시장이 이렇게 요동치면 금리 인상을 미룰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 달러화 약세는 심화된다. 선진국 통화 가치는 반사효과에 따른 강세를 띤다. 노무라증권은 단기적으로 엔화 가치는 4.7%, 스위스 프랑은 1.2% 상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엔화의 경우 달러당 99엔 선까지 갈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신흥시장은 피해자다. 트럼프가 일으키는 보호무역의 돌풍은 수출시장을 냉각시킨다. 시몬 존슨 전 국제통화기금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의 승리 는 세계 교역을 대공황 시기로 되돌려 놓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신흥국 통화 가치는 추락이 불가피하다. 대미 수출 의존도가 80%에 달하는 멕시코가 단적인 사례다. 페소화 가치가 8.6% 떨어진다는 전망이 있다(노무라증권).
한국 경제 역시 트럼프 리스크의 한복판에 서 있다. 글로벌 수출시장 전반이 위축되는 데다 중국이 입을 충격의 상당 부분이 고스란히 전이되기 때문이다. 안전자산을 좇는 글로벌 자금은 아시아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인 한국에서 발을 빼는 데 익숙하다. 스웨덴 투자은행 SEB는 아시아 신흥국 통화 가운데 한국 원화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콕 집어 말했다. SEB는 달러당 원화 가치가 1180원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먹구름이 최순실 사태에 따른 국정 리더십 공백 위로 덮쳐 온다는 점이다. 원화 약세와 주가 하락이 연쇄적으로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is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