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대의 지성과 산책] 최재천 “개도 개성 뚜렷하고 아픔 공감…8마리 키우며 실감”

중앙일보

입력 2016.10.26 01:39

수정 2016.10.26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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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생태원에는 최재천 원장이 즐겨 찾는 산책길이 두 곳 있다. 다윈의 길, 제인 구달 길. 영장류 연구가 제인 구달(82) 박사가 2014년 방문해 새긴 동판이 보인다.

그와 동물 얘기를 하면 인간이 잘 보인다. 시인을 꿈꿨던 자연과학자 최재천(62). 그는 8마리의 개와 함께 살고 있다. 개미·까치·원숭이·돌고래에 이어 새로운 연구에 돌입한 것은 아직 아니다. 외동아들과 부인이 좋아해 키우고 있다지만 8마리가 어디 쉬운 일인가. 그렇게 산 지 10년이 넘었다. “우리 집은 개판입니다. 8마리의 개와 그들을 시중드는 2명의 하인이 살고 있죠.” 농담처럼 던졌지만 사회생물학자의 눈빛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그는 예언에 능하다. 호주제 폐지, 문과·이과 통합, 고령화 사회와 인생 이모작 등 그가 주장한 일들은 대개 현실이 됐다. 반려동물도 그중 하나다. 개 연구가 본격 진행된다면 세계적인 성과가 그의 집에서 나올지도 모른다. 물론 희소식이겠지만 그 결과는 인류에게 그다지 좋은 소식은 못될 것 같다. ‘개만도 못한 사람’이란 옛말이 과장은 아닐 것 같은 ‘불길한 예감’. 개의 인지·공감 능력 연구가 세계 동물학계의 핫 트렌드라고 하는데 다른 개의 아픔에 공감하는 개의 능력이 입증될 수 있겠기에 그렇다.

다윈의 길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직을 휴직하고 충남 서천 국립생태원 초대원장을 맡은 지 3년이 거의 다 됐다. 세계 규모의 개미 특별전, 자연을 좋아한 화가 장욱진 전시 등이 열리는 국립생태원에서 그를 만났다. 문과·이과 통합교육을 15년 전부터 강조해 온 그가 내년 실시를 앞두고 의외의 발언을 했다. “이럴 바에는 통합하지 않는 게 낫다.”
국립생태원 초대원장 3년 기한이 다가오는데.
“그만두려 한다. 어쩌다가 일찌감치 석좌교수가 됐는데 이화여대에서 더 이상 자리를 비울 수 없을 것 같다. 집에서 개도 8마리나 기르고 있는데 더 한다면 미친 거다. 아내가 지방대 교수 할 때 외동아들을 길러 보고 싶다 해서 닥스훈트 한 마리를 기르기 시작했는데 새끼를 치며 대가족이 됐다.”

개들과 함께하는 최재천 원장. [일러스트 박근용]

새로운 연구 과제인가.
“사실 최근 학계에서 가장 많이 이뤄지는 게 개 연구다. 그런데 하버드대 연구소에 가 봐도 기껏해야 몇 마리 연구한다. 한 종으로 8마리이고, 다 유전적으로 한집안이고 하니 상당히 해 볼 만한 세팅을 한 것이다. 그런데 안사람이 그런 눈치를 채고 얘네들 연구하지 말고 지극히 자유롭게 하자고 한다. 개 관리는 전적으로 안사람 몫이다.(웃음)”
 
개들만의 특별한 모습이 발견되나.
“동물 인지 연구에서 키워드 중 하나가 개성이다. 옛날 같으면 동물의 개성 그러면 그야말로 개가 웃는 얘기였다. 무슨 퍼스낼리티(personality·개성)냐, 개에게 퍼슨(person·개인)이 있느냐, 이랬다. 그런데 최근 ‘진딧물의 개성’에 관한 논문이 나왔다. 또 하나는 동물의 공감 능력 연구다. 영어로는 엠퍼시(empathy). 남을 이해하는 능력, 동물에게 그게 있다는 게 밝혀지고 있다.”
 
집의 8마리에도 개성이 보이나.
“8마리가 다 다르다. 개성이 충만하다. 지금 엄마 개와 자식 7마리가 살고 있는데 공주라는 암컷은 정말 독특하다. 엄마가 어디 가면 동생들을 끌어안고 보살펴 준다.”
구체적으로 발견되는 게 있나.
“ 강아지 한 마리가 디스크라서 못 걸었는데 그 녀석이 집안에서 조약돌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일하는 분 얘기가 공주가 물어다 줬다고 하더라. 폐쇄회로TV(CCTV)를 설치해 보면 좋겠는데 아내가 반대해 못하고 있다. 개가 그 정도 공감 능력을 갖는 것까지 밝혀진 적은 없는데 굉장한 발견이다.”

사막여우

동물 사회에도 고령화 문제가 있나.
“현재까지 알고 있는 한 인간밖에 없다. 다른 모든 동물은 번식이 끝나면 서둘러 죽는다. 『인류의 기원』의 저자인 이상희 캘리포니아대(리버사이드 캠퍼스) 교수가 쓴 논문이 있다. 이미 5만 년 전에도 호모사피엔스에게서만 고령화가 있었다는 건데 결론은 ‘호모사피엔스는 고령화를 진화적 전략으로 택한 종’이라는 거다.”
고령화 전략을 택한 이유는.
“ 다른 동물들은 남의 새끼를 생각할 겨를이 없는데 인간은 젊은 사람의 아이를 나이 든 사람이 길러 주는 식으로 진화했다. 거기서 경쟁력이 생긴 거다. 인류 문명은 고령화 때문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
앞장서 주장해 온 문·이과 통합교육이 내년에 실시될 예정인데 어떻게 보나.
“너무 늦었지만 해야 될 일이었다. 그런데 세부 내역을 보면 걱정스럽다. 이럴 거면 통합하지 않는 게 좋겠다.”
이제 와서 통합에 반대하는 건가.
“21세기가 과학의 세기이기 때문에 과학을 모르고 살 수 없으므로 통합하자는 거였다. 통합하자고 그래 놓고 과학이나 수학은 힘드니까 좀 안 해도 되게 하자는 얘기가 나오는데, 그렇게 되면 그나마 몇 안 되는 이과생도 제대로 못 길러낸다. 거기서 무슨 국가경쟁력이 생겨나겠는가.”
앞으로 꼭 해 보고 싶은 일은.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게 진화생물학적인 생각이다. 먼 미래에 대한 생각은 없다. 가까운 미래 한 20년 정도는 우리 청년들을 위해 살고 싶다. 내가 대학 다닐 때보다 10배는 더 열심히 공부하는데 일할 곳이 없는 것은 문제다. 젊은이들이 신나게 일하고 즐기는 세상을 만들어 주고 싶다.”

글·사진= 배영대 문화선임기자 balanc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