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45대 대통령을 뽑는 대선전이 이렇게 눈 뜨고 못 볼 진흙탕 싸움으로 전락한 것은 트럼프에게 큰 책임이 있다. 그는 궁핍한 백인들의 표심을 노려 인종차별, 여성혐오, 반(反)이슬람 등 기성 정치인이 절대 꺼낼 수 없는 금기를 전면에 내세웠다. 신문 1면에 나기 위해 막말과 기행(奇行)도 서슴지 않았다. 그 결과 이번 대선전은 정책 논쟁은 온데간데없고 인신 공격에만 올인하는 추잡한 공방전으로 변질됐다.
성추문 맹공하며 추잡한 이전투구
미국식 가치와 리더십에 큰 흠집
한국 ‘대선 결과 리스크’ 대비해야
대선전이 막장극이 된 데는 클린턴의 책임도 작지 않다. 국무장관 시절 자신의 사설 e메일에 1급 국가 정보를 다량 포함시킨 사실을 들키자 궁색한 변명으로 일관해 트럼프의 공격을 자초했다. 남편의 외도를 알고 “목 졸라 죽이고 싶었다”고 했으면서도 부부관계를 유지해온 것도 비호감의 원인이다. ‘대통령병 걸린 위선자’란 비아냥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두 후보의 이전투구는 세계를 이끌어온 미국의 권위에 큰 흠집을 냈다. 유권자의 밑바닥 분노와 말초신경을 자극하고, 사탕발림 공약으로 선동하는 포퓰리즘이 대선판을 뒤덮고 있다. 언론도 예외가 아니다. 워싱턴포스트·뉴욕타임스 등 주류 매체들은 노골적으로 ‘트럼프 때리기’에 올인하고 있다. 선거 보도의 기본인 ‘불편부당’이 이렇게 쉽게 폐기된 것은 언론을 ‘제4부’로 받들어온 미국의 가치체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 징조로 읽힌다.
더 큰 문제는 막장극 대선전이 미국 한 나라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고 세계를 요동치게 할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대선전을 통해 미국 사회는 극도의 분열상을 드러냈다. 그 분열상은 누가 대통령이 되든 대외정책에도 반영될 것이다. 자연 미국의 리더십은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대의정치, 대통령제, 언론 중립 등 한국을 비롯한 대다수 국가가 채용해온 미국식 정치원리에도 의문이 제기될 것이다. 이미 중국은 미 대선전의 혼란상을 두고 “서구식 민주주의가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 조소를 던지고 있다. 그런 만큼 미 대선 결과가 초래할 정치 리스크에 우리는 주목하고 대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