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화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명예교수
가장 큰 교훈은 역사상 지진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것이다. 필자는 33년 전인 1983년에 역사상 지진을 분석해 경주 부근을 통과하는 양산단층이 명백한 활성단층이며, 지금도 강진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삼국사기 등 역사에 기록된 2200여 차례 지진의 진앙과 규모를 결정하고 한반도 지진활동의 특성을 밝힌 논문을 2006년 미국지진학회지에 발표했다. 그러나 역사상 지진의 진앙과 크기를 현대적 지진계 기록으로 뒷받침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 중요성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 왔다.
역사적 분석에 의하면 20세기 이후 계기로 측정된 한반도의 지진활동은 이전 1900년간 기록된 지진활동에 비하면 거의 무시할 수 있을 정도다. 전 세계 대규모 활성단층들은 지진활동이 각기 달리 나타나는 몇 개의 구역(segment)으로 구분된다. 이는 각 활성단층에서 발생 가능한 지진의 최대 규모를 제한하기 때문에 재해 예측 및 대응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예컨대 필자는 지난 1991년 2000년간의 역사 자료를 근거로 양산단층을 세 구역으로 나누고, 경주가 포함된 중부구역에서 발생 가능한 최대 규모를 6.7로 평가했다. 이러한 작업은 20세기 이후의 계기로 기록된 지진자료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조기경보다. 기상청은 지난해부터 규모 5.0 이상의 국내 지진이 발생하면 50초 이내에 국민안전처 등 유관기관에 통보하고 있다. 2020년까지는 이를 10초로 단축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경주 지진에선 기상청이 규정대로 국민안전처에 통보했음에도 국민들이 재난문자를 받는 데 8분가량 지연됐다. 조기경보는 최대한 시간을 단축하는 데 그 의의가 있으므로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직접 기상청이 발령하도록 조정해야 한다.
지진을 파악하는 기상청의 능력도 보다 강화돼야 한다. 이번 경주 지진의 피해가 규모에 비해 이례적으로 적은 이유로 지진이 비교적 깊은 15㎞에서 발생되었음이 지적되고 있다. 지진 피해는 진원 깊이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진앙과 진원 깊이는 지각구조 모델에 의해 결정되며 깊이가 모델에 더 민감하다. 현재 기상청이 사용하는 모델은 IASP91로 20㎞ 깊이에 상부지각과 하부지각을 구분하는 콘라드(Conrad)면이 있다. 그러나 한반도의 지각에 콘라드면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기상청의 분석모델은 이를 반영하는 것으로 교체해야 더욱 정확한 깊이를 결정할 수 있다. 또 기상청 홈페이지 지진목록에 진앙 깊이도 제시돼야 한다.
다행히 경주 지진이 인근 고리·월성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성에 큰 문제를 제기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이번 경주에서 발생한 강진들은 원자력발전소 내진 설계의 중요한 요소인 지반진동감쇠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제공했다. 이 정보와 기타 추가 정보에 근거해 발전소 지진 재해를 재평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역사 지진 기록에 의하면 779년 경주에서 집들이 무너지고 100여 명이 사망한 지진 등 규모 6.7로 평가되는 지진이 4회 발생했다. 양산단층에서 앞으로 이 규모의 강진들이 발생하리라 예상되지만 그 시기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한반도는 유라시아판 내부에 위치해 판 내부 지진활동의 전형적인 특성인 불규칙성을 보여 준다. 판 내부 지진활동은 판구조론으로 설명이 어렵기 때문에 전 세계 지진학계의 화두가 돼 있다. 달리 말하면 우리나라는 판 내부 지진활동 연구를 위한 좋은 환경을 구비하고 있다. 정부의 획기적 지원으로 국내에 충분한 연구 인력이 확보되면 한반도 지진 재해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 판 내부 지진 연구를 주도하는 훌륭한 연구성과도 많이 나오리라 생각한다.
이 기 화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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