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당신] 빚진 잠 ‘일시불’ 아닌 ‘할부’로 해소 … 몰아 자지 말고 나눠 자라

중앙일보

입력 2016.09.26 00:01

수정 2016.09.26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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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 수면시간보다 적게 자면 수면부채가 쌓인다. 한번에 몰아서 자는 것보다 평소 취침 시각을 한두 시간 앞당기면 수면부채를 건강하게 갚을 수 있다.

잠 부족 땐 비만·당뇨병·치매 발병률 높아져
정상적인 수면은 깊은 잠 단계(비렘수면)와 얕은 잠 단계(렘수면)를 5~7회 반복한다. 깊은 잠은 근골격계의 피로를 풀고 기억력을 강화한다. 얕은 잠은 눈동자가 빨리 움직이며 꿈을 꾸는 단계인데, 이때 집중력·인지력을 높이고 정신적 스트레스를 줄인다.

그런데 이런 수면시간이 부족하면 수면부채가 쌓인다. 그럴 경우 빚에 따른 ‘이자’(부작용)를 내야 한다. 대표적인 게 집중력·기억력·인지력 저하다. 강동경희대병원 신경과 수면센터 신원철(대한수면학회 정책이사) 교수는 “정신이 산만해 병원을 찾는 아이 가운데 수면부채가 심하게 쌓인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잠 모자라 생긴 ‘수면부채’ 갚는 법

수면부채는 뇌 건강을 위협한다. 우리 몸은 깨어 있는 동안 뇌가 활동하면서 베타아밀로이드 같은 찌꺼기를 배출한다. 그런데 잠을 잘 때 뇌를 순환하는 물(뇌척수액)이 뇌세포 사이사이로 들어가 이 찌꺼기를 씻어낸다. 신 교수는 “수면부채가 만성화되면 이 찌꺼기가 계속 쌓여 알츠하이머성 치매 발병률을 높인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수면부채는 비만도 유발한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하루에 7~8시간을 자는 청소년의 비만율은 8.8%인 반면 4시간 이하인 청소년의 비만율은 13.4%나 된다. 이는 잠을 잘 때 나오는 식욕억제호르몬(렙틴)이 줄고, 식욕을 자극하는 호르몬(그렐린)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수면부채는 성장호르몬 분비를 막아 어린이·청소년의 성장을 방해한다. 잠이 부족하면 교감신경을 흥분시켜 혈당·혈압을 높이고 코르티솔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을 많이 분비한다. 또 당뇨병과 함께 협심증·심근경색 같은 각종 심혈관질환 발병률을 높인다. 신원철 교수는 “미국 보스턴대 의대 고트리브 박사가 성인(53~93세) 148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하루 7~8시간 자는 사람에 비해 5시간 이하로 자는 사람은 당뇨병 발병률이 2.5배, 관상동맥질환 발병률이 1.5배 높았다”고 설명했다.


적정 수면시간 알면 빚 청산에 유리
주중에 하루를 꼬박 새운 사람뿐 아니라 규칙적으로 자는 사람에게도 수면부채가 생길 수 있다. 신 교수는 “사람마다 적정 수면시간이 다른데 규칙적으로 자더라도 일정 시간을 채우지 못한다면 날마다 수면부채가 쌓이는 꼴”이라고 설명했다. 가령 적정 수면시간이 8시간인 사람이 매일 6시간만 잔다면 1주일에 14시간의 수면부채를 떠안게 된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자신의 수면부채를 계산하려면 자신에게 맞는 수면시간부터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 수면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국의 윌리엄 찰스 드멘트 박사가 개발한 ‘적정 수면시간 찾는 법’이 대표적인 자가진단법으로 통한다.

이 진단법에 따르면 평소 취침 시각에 맞춰 잠을 자되 잠이 더 이상 오지 않을 때 일어나는 과정을 3~4일간 반복하면 된다. 가령 매일같이 오후 11시에 자고 오전 6시에 알람소리를 듣고 일어났다면 알람을 끄고 오후 11시에 잠자리에 든다. 첫날엔 알람 없이도 오전 6시에 일어날 수 있다. 몸이 평소 아침 기상시각에 길들여져서다. 이때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잠에 빠졌다가 눈을 뜨면 또다시 잠을 청해 본다. 단, 이때 불은 절대 켜지 않아야 한다. 잠을 청해도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으면 기상 시각을 기록한다.

신 교수는 “마지막 3~4일째 자신이 잠을 잔 시간이 바로 내 몸에서 원하는 수면시간”이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자신만의 수면시간을 잘 지키면 다음날 낮에 졸리지 않고 개운한 느낌이 든다는 것. 신촌세브란스병원 신경과 허경(대한수면학회 부회장) 교수는 “성인의 경우 적정 수면시간은 개인마다 4~10시간으로 다양하다”며 “일반적으로는 7~9시간이 평균 수준”이라고 말했다.

주말에 몰아 자면 수면 리듬 깨져
이미 발생한 수면부채는 어떻게 갚아야 할까.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주은연(대한수면연구학회 학술이사) 교수는 “밀린 잠을 주말에 왕창 몰아서 자는 건 오히려 주말 이후의 수면리듬을 깨뜨릴 수 있다”며 “수면부채가 생기면 주말까지 기다리지 말고 다음날부터 매일 조금씩 빚을 갚아나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언급했다. ‘일시불’이 아닌 ‘할부’로 갚는 게 좋다는 얘기다. 가령 이번 주 수요일에 밤을 새웠다면 다음날(목요일) 점심시간에 20분에서 최대 1시간까지 낮잠을 잔다. 또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잠자리에 드는 시각을 평소보다 한두 시간 앞당기는 방식도 있다. 단, 낮잠은 오후 3시를 넘기지 말아야 한다. 늦은 오후 낮잠은 그날 밤 수면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정심교 기자 simky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