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이런 자유가 새롭고 흥미로웠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한국에서 한 가족과 가까워진 게 계기였다. 한 친구가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부모·사촌·이모, 심지어 조카까지 만나게 됐다. 이들은 어느 추석날 일산에 있는 그의 이모 집에 나를 초대해 점심을 함께했다. 사실 그날 저녁 친구를 만나기로 했기에 점심 뒤 곧바로 서울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친구의 가족·친척은 아무도 곧바로 귀가하지 않았다. 다 함께 TV를 보다 저녁식사까지 함께했다. 그날 나는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느꼈다. 바로 타인에 대한 의무감이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함께 지켜야 하는 의무 말이다. 미국에 있을 때 가족 모임에서 종종 느꼈던 바로 그 감정과 비슷했다. 오랜만에 이런 소속감과 의무감을 느낄 수 있어 기뻤다.
미국에 있을 때는 이러한 의무감에서 부담감을 느끼곤 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의무감이 주는 기쁨을 재발견하게 된 것이다. 의무는 우리 삶에 의미와 리듬을 더해주는 일종의 정신적 버팀목이다. 나를 다른 사람들의 삶과 묶어주는 끈이다. 의무감을 갖는 건 기쁜 일이다. 혼자가 아니라는 걸 뜻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어떤 일에 대해 내게 의지하고 신뢰하며 기댄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이는 나도 힘든 일이 있을 때 그들에게 기대고 신뢰하며 의지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JTBC ‘비정상회담’ 출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