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과 동남아국가연합 등 27개국이 참여하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 외교장관회의가 26일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열렸다. 이번 회의에선 남중국해 와 북한 핵·미사일 등이 논의됐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 일본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 라오스 살름차이 코마싯 외교장관, 중국 왕이 외교부장(왼쪽부터). [AP=뉴시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이날 오후 열린 ARF 회의 모두 발언에서 “유엔 안보리 결의를 충실하게 이행한다는 차원에서라도 일치단결해 한목소리로 북한에 경고 목소리를 보내자”고 강조했다. 또 “지난 1월 북한 핵실험 이후 15번에 걸친 미사일 발사를 포함해 도발의 위협이 과거 어느 때보다 엄중하고 빈도도 강화되고 있다. 실제로 우리를 공격하겠다는 의도를 명백히 밝히고 있기 때문에 강력한 메시지를 북한에 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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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세 “북한에 경고 목소리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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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이날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 문제를 의장성명 초안에 넣으려고 총력전을 벌였다. 일본 NHK는 이날 의장성명 초안에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와 관련해 “중국 등 복수의 외교장관이 그 계획에 우려를 표명했다”는 표현이 포함됐다고 보도했다. ARF 의장국으로서 성명 초안 작성을 맡은 라오스가 중국 입장을 적극 반영했다는 얘기도 나왔다. 라오스는 북한과도 우호관계를 맺고 있다.
하지만 외교부는 ARF 의장성명 초안의 경우 각국이 여러 차례 회람을 하면서 협상을 통해 내용을 확정하기 때문에 현재로선 의미가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과 미국·일본 등이 강력히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의 의도대로 의장성명이 나오지 않을 것이란 뜻이다. 의장성명은 문안에 대한 각국 의견을 수렴한 뒤 라오스를 중심으로 아세안 10개국이 최종안을 확정하기 때문에 발표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지난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ARF 회의 때는 회의 종료 나흘 만에 의장성명이 나왔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관련한 외교전도 뜨거웠다. 미·중이 정면으로 대립했다. ARF 회의에 앞서 국립컨벤션센터에선 오전부터 아세안+3(아세안 10개국+한·중·일) 외교장관회의,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외교장관회의 등이 잇따라 열렸다. 이 중 미국과 호주가 참석한 EAS에서 남중국해 문제가 의제로 올랐다.
지난 12일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판결에서 승소한 필리핀과 미국, 미국의 동맹국인 호주·일본은 판결의 법적 구속력을 강조하면서 판결상 의무를 이행하라고 ‘융단폭격’에 나섰다고 한다. 중국도 그냥 당하지 않았다.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전날 미·일·호주 외교장관회의에서 같은 주장을 담은 공동발표문이 나온 걸 거론하며 “(중국에) 우호적이지 않다”고 불만을 표했다. 그런 뒤 “아세안 국가들과의 협력을 통해 해결할 것”이라고 맞섰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느 쪽 편도 들지 않았다. 미국은 ARF 의장성명에도 최근 국제재판소의 남중국해 영유권 재판 결과를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나 중국은 반대했다고 한다. 사드, 남중국해, 북한 핵 문제 등이 한꺼번에 얽혀 한국 외교가 풀기 어려운 ‘고차방정식’에 직면했음을 보여준 이번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는 이날 ARF를 마지막으로 폐막했다.
비엔티안=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