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는 백기완 선생(왼쪽), 새김판은 문정현 신부가 한 공동작품 ‘산 자여 따르라’를 선보이는 두 어른.
백 선생은 붓글씨 30여 점, 문 신부는 새김판(서각) 70여 점을 선보인다. “우리는 예술가가 아니다”라며 손사래를 치는 두 어른 마음을 움직인 건 정비작업 중 스크린도어에 끼어 생을 다한 19세 청년노동자였다. 비정규노동자를 위한 쉼터 ‘꿀잠’을 짓겠다는 후배들 부탁에 “그럼 우리를 앞장세워 집 얘기를 하라”고 나섰다.
청년들 휴식공간 ‘꿀잠’ 모금 위해
붓글씨 30여 점, 서각 70여 점 기증
문정현 신부는 속이 뒤집어지는 일을 당할 때마다 말 못할 분노를 힘 삼아 나무판을 깎기 시작했다. 논밭 뺏기고 쫓겨난 경기도 평택 대추리 주민들, 용산 참사 현장의 희생자들을 보며 심장을 쪼듯 끌을 겨눴다. 싸움과 싸움 사이에 ‘시간 죽이기’ 한 걸 어찌 사람들 앞에 내놓느냐 망설였지만 “작품이라기보다는 거리에서 칼잠 자는 노동자들 손 잡아주는 일이라 여기고 보태주는 마음으로 가져가라”고 말했다.
비정규노동자의 사랑방 구실을 할 ‘꿀잠’은 지역에서 올라오는 이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역 근처 집을 10억 원 모금 예산으로 찾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전시를 기획한 사진가 노순택씨는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시대의 2인 전에 많이 동참하시라”고 부탁했다. 두 어른을 위해 헌시 ‘생명의 약속’을 쓴 송경동 시인은 “이제 우리는 두 분께 ‘비정규직 없는 평등한 세상’ ‘그 누구도 그 누구 위에 군림하지 않는 세상’ ‘함께 일하고, 함께 나누되, 함께 올바로 잘사는 노나메기 세상’을 내놓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글·사진=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