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처음 만난 건 지난달 24일 곡성역 앞이었다. 영화 ‘곡성(哭聲)’의 흥행이 곡성(谷城)군에 미친 영향을 취재하러 KTX를 타고 온 기자를 안내하러 나와 있었다. 역 앞 기차공원은 세계장미축제를 보러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붐볐다. 축제를 홍보하느라 양 주무관의 얼굴은 검게 그을려 있었다. 그는 곡성군에 대한 설명이 담긴 두툼한 홍보자료를 건넸다. 그리고는 “곡성군청에 일한 이후로 이렇게 곡성이 주목받았던 건 처음이에요. 정신없이 바쁘지만 그래도 즐겁게 일하고 있죠”라며 환하게 웃었다.
지역에 대한 자부심, 그을린 얼굴 … 섬진강변에 앉아 얘기 나눴는데
이날도 양 주무관의 안내에 따라 영화의 주요 배경이 됐던 곳을 돌아봤다. 차를 타고 섬진강변을 따라 달리면서 그는 곡성을 “음악의 오선지처럼 아름다운 곳”이라고 소개했다.
“길을 잘 보세요. 저 아래로 깨끗한 섬진강이 흐르고, 그 옆에 자전거길이 나있죠. 지금 우리가 달리고 있는 국도 17호선이 있고, 그 위로는 레일바이크를 탈 수 있는 옛 철길과 산책로인 숲길이 있어요. 여기에 봄에 철쭉이 필 때는 음표가 달린 것처럼 6개의 길이 나죠. 전국에 이런 아름다운 길을 갖춘 곳은 곡성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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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주무관과 함께 일했던 박광천 곡성군청 홍보팀장은 1일 통화에서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곡성에 대한 애정도 참 많았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박 팀장은 유근기 군수와 함께 장례기간 내내 빈소를 지켰다. 박 팀장은 “차가 있는데도 매일 버스를 타고 광주에서 출퇴근할 정도로 알뜰하면서도 주변 동료한테는 정도 많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경기도 여주에서 근무하면서 주말부부처럼 떨어져 지내다가 가족과 합치려고 곡성에 내려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일이 생기고 말았다”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유족들은 3일 광주 영락공원에서 유 군수와 동료 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양 씨의 장례를 가족장으로 치른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