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정치적 상식을 초월한 트럼프 현상은 위스콘신까지인가. 공화당 주류세력과 미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걱정하는 미국인들, 그의 몰상식한 대외정책 발언에 신경이 쓰이는 한국과 일본과 나토 동맹국들은 그러기를 바란다. 그러나 속단은 이르다. 적어도 대의원수 92명의 4·19 뉴욕주 예선까지는 기다려봐야 한다. 대의원 수가 169명이나 되는 캘리포니아도 남았다.
도대체 트럼프 현상의 진원지는 어디인가. 그의 전기작가 마이클 단토니오에 따르면 트럼프는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진지한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 뉴욕 맨해튼에 있는 트럼프 타워의 아방궁 같은 펜트하우스에서도 단토니오는 책을 한 권도 보지 못했다. 그렇게 문화적 소양이 바닥인 트럼프가 어떻게 미국 정치명문가의 젭 부시를 초장에 퇴장시키고, 플로리다 출신 상원의원 마르코 루비오를 플로리다에서 무릎 꿇리고, 테드 크루즈를 기진맥진 상태에서 위스콘신까지 오게 만들었는가.
트럼프는 서민들의 불만을 히틀러 뺨치는 선동·선전술로 이용하고 있다. 트럼프는 로저 스톤이라는 파렴치한 흑색선전 전문가가 막후에서 써 주는 각본대로 인종차별적, 배타적 발언을 쏟아낸다: 미·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워 마약과 불법 이민자를 막겠다, 테러리스트는 가족까지 처형하겠다, 한반도는 우리가 관여할 바 아니다, 주한·주일미군을 철수하겠다, 높은 관세로 중국 상품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겠다, 나토 동맹국들에 유럽 방위비용을 물리겠다….
로저 스톤은 『클린턴 부부의 여성들과의 전쟁』이라는 괴상한 제목의 책에서 클린턴의 딸 첼시가 빌 클린턴의 딸이 아니고, 빌에게는 흑인 매춘부가 낳은 아들이 있다고 주장한다. 11월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가 대결할 때 트럼프가 써먹을 흑색선전 자료다. 트럼프 현상은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가 되고 안 되고와는 상관없이 미국의 정치문화를 깊고 혼탁한 수렁에 빠뜨리고 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연설담당 보좌관 피터 웨너는 이렇게 한탄한다. “공화당은 분열되었다. 트럼프가 대선후보가 되면 공화당은 종말을 맞는다.” 공화당이 끝장난다는 말은 과장이지만 환골탈태하는 개혁은 불가피하다. 미국 정치, 더 크게는 미국 문명 자체도 반성이 요구된다.
위스콘신이 트럼프 폭주의 최후의 저지선이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한국과 일본에 핵무기 보유를 허용하겠다는 트럼프는 웨너의 표현대로 끔찍한 독성을 가진, 정서적으로 불안한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미국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소름 끼친다. 주한·주일미군이 느닷없이 철수하면 제일 반가워할 사람은 김정은이고 한반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가 된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질서는 중국 주도로 넘어간다. 트럼프가 7월 전당대회까지 매직넘버인 1237명의 대의원 수를 확보하지 못하여 경쟁 전당대회(Contested convention : 결선투표)라는 복잡한 절차에 따라 이성적인 대안 후보가 나오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