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대해 고민이 많던 열일곱 살의 나는, 어느 날 그 고민들을 한 번에 해결해 준 충격적인 영화를 만났다. 영화의 첫 장면, 20대 초반의 마크 렌튼(이완 맥그리거)은 도둑질을 한 뒤 스코틀랜드 중심 도시 에든버러의 프린세스 스트리트를 정신없이 질주하고 있었다.
경찰에게 쫓기는 그의 모습에 맞춰 이기 팝의 곡 ‘Lust for Life’가 흘렀다. 이윽고 렌튼의 독백이 들려왔다. “인생을 선택하라. 직업을 선택하라. 대형 TV를 선택하고, 세탁기와 차도 선택하라. (중략) 결국엔 늙고 병드는 것을 선택하라. 자신을 그렇게 만든 이기적이고 재수 없는 놈들에게 조소를 퍼부으며. 초라한 집에서 임종을 맞이하라. (중략) 왜 내가 그딴 걸 원해야 하지? 난 선택하지 않는 삶을 선택했다. 이유? 없다.” 내 뒤통수를 친 영화는 바로 대니 보일 감독의 명작 ‘트레인스포팅’(1996)이었다.
청년문화의 일탈을 경쾌하게 그린 대니 보일 감독 영화 `트레인스포팅`
한창 꿈 많던 당시의 내겐 그런 삶이 시시해 보였다. 나는 의미 있게 살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랐다.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명문 대학교를 나와 좋은 직장을 얻고 결혼하여 남들처럼 사는 게 정답일까? 한편으론 친구들과 놀며 방탕하게 살아 보고 싶었다. 이도 저도 못하고 머뭇대던 시기에 친구 집에서 ‘트레인스포팅’을 본 것이다.
주인공 렌튼은 "난 과거를 청산하고 앞으로 나아가 인생을 선택할 것이다"라며 마약의 덫에서 도망친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또다시 도망치며 이렇게 말한다. “난 과거를 청산하고 앞으로 나아가 인생을 선택할 것이다. 가족·대형 TV·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근무·죽을 날 따위를 선택할 것이다. 난 당신처럼 될 것이다.”
이 대사를 듣고 생각했다. 내가 가야 할 방향은 어른들이 말하는 길도, 인생을 낭비하는 것도 아닌 또 다른 길이라고. 시시하고 평범해 보이는 삶이라도 내가 매일 어떤 태도로 살아가는지가 중요했다. 그것이야말로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들어 준다는 사실을 나는 ‘트레인스포팅’을 보며 깨달았다.
비슷한 시기에 부모님 몰래 봐야 하는 또 다른 영화를 알게 됐다. 바로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파이트 클럽’(1999)이다. 멋진 주연 배우 브래드 피트와 에드워드 노튼의 격한 말투, 매력적인 연기, 격투 장면의 빠른 액션을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브래드 피트, 에드워드 노튼 주연 영화 '파이트 클럽'
그때마다 ‘파이트 클럽’의 주인공 잭(에드워드 노튼)과 그의 또 다른 자아 테일러(브래드 피트)의 명대사를 떠올렸다. “우리는 쓸모없는 것들을 산다. 우리에게 있지도 않은 돈으로,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네가 소유하는 게 결국 널 소유하게 되지.” 너무나 당연하지만 잊기 쉬운 진리다.
'파이트 클럽'은 물질주의 사회의 인간 소외를 비판한다.
두 영화에서 배운 걸 나는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대단하지는 않지만, 실천도 하면서 산다. 이를테면 나는 음악을 듣고 기타와 베이스 치는 걸 정말 좋아해도, 비싼 악기에 집착하거나 자기 계발에 열을 올리지는 않는다. 가끔 집에 있는 기타를 연주하며 여흥도 즐기지만, 아내와 함께 산책하는 여유가 내게는 훨씬 더 소중하다.
‘비정상회담’(방영 중, JTBC)에 출연하며 한국 청소년의 삶을 조금은 알게 됐다. 고민이 많을 그들에게 얘기하고 싶다. 열심히 공부해서 원하는 학교에 들어가는 건 좋은 일이지만, 그게 삶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파이트 클럽’의 원작자 척 팔라닉은 소설가가 되기 전 트럭 운전사였다. 거리에서 그가 몸소 배운 삶이 영화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가 쓴 대사를 빌리자면 “너는 네 직업도 아니고, 네 지갑 속 돈도 아니다”. 여기에 하나 덧붙이고 싶다. “너는 네 점수가 아니다.” 여러분의 삶은 시험이나 면접보다 더 무한하다.
알베르토 몬디
맥주와 자동차에 이어 이제는 이탈리아 문화까지 영업하는 JTBC '비정상회담' 마성의 알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