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 하나를 가리키며 “이게 뭔 줄 아시나요?”라고 던진 마지막 문제. 이 후보가 “마(麻)”라고 답하자 문 전 대표는 “그래. 마 중에서도 장마(長麻)”라고 맞장구쳤다. 그때 좌판 할머니로부터 돌직구가 날아왔다. “아닌데예. 우엉인데예.” 박장대소가 터졌다.
총선 변수의 인물 <1> 문재인
김종인, 102석을 승패 기준 제시
문재인 정치생명, 김 대표 손에 달려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지난달 31일. 문 전 대표는 부산에서도 야권의 험지인 중·영도구와 동·서구를 돌았다. 영도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지역구, 동구는 1988년 통일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허삼수 후보를 눌렀던 곳이다.
초량시장에서 분식 장사를 하는 하금자(65)씨는 “노(무현) 대통령 손도 잡았었다”며 문 전 대표가 내민 손을 잡았다. 하지만 “이번엔 좀 바까(꿔)주이소”라는 문 전 대표의 말에 하씨는 시선을 피했다. 문 전 대표가 떠난 뒤 하씨는 “나는 전주 출신이라 민주당(더민주)을 뽑지만…어려울 것”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1일 김 대표가 호남행을 하자 문 전 대표는 급히 상경했다. 박주민(은평갑)·강병원(은평을)·진성준(강서을)·황희(양천갑) 후보 등 친문(親文) 인사 선거를 도왔다. 은평구 연신내역 인근에선 쏟아지는 사진촬영 요청에 발길을 떼기가 어려웠다. 문 전 대표와 악수를 나눈 김모씨(45)는 “다음 대통령은 문재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또한 “국민의당 후보 때문에 더민주가 고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문 전 대표는 이번 총선 결과에 가장 큰 걸 맡긴 정치인이다. 그는 ‘정치생명’을 걸었다. 지난 1월 대표직을 내려놓으면서는 “총선 결과에 무한책임을 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운명을 쥔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김종인’이다. 운동권 정당, 진보 패권 정당의 색깔을 빼겠다며 김 대표는 문 전 대표와 가까운 사람들에게까지 칼을 뻗었다. 측근들의 비명 소리에도 문 전 대표는 김 대표 편을 들 수밖에 없었다.
문 전 대표의 생명선, 무한책임의 마지노선은 어디일까. 김 대표는 지난 16일 ‘현재 의석수(102석) 유지’를 승패 기준으로 꼽았다. 문 전 대표도 “현재 의석수를 지키는 게 1차 목표”라고 말했다. 야권분열 상황에서 이 선이라도 넘긴다면 문 전 대표의 정치생명은 유지될 수 있다. 그는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제외한 대선주자들 중 지지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대표를 그만두고, 다른 사람에게 당 운영을 넘기고서야 오르는 지지율을 기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문 전 대표는 총선 이후가 더 중요하다. ‘총선 후에도 역할을 하겠다’고 예고한 김 대표가 그리는 그림에 영향을 받겠지만 선거에서 ‘선방(善防)한다면’ 김 대표를 영입한 문 전 대표도 공을 나눠 가질 수 있다.
변수는 김 대표가 그의 경쟁자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물론 선거 결과가 안 좋아 현 의석수에 미달할 경우 문 전 대표는 무한책임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 그게 ‘정계은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 전 대표가 강서을에서 양천갑으로 이동하는 동안 20분 동승했다. 문 전 대표는 “바닥 민심은 바꿔보자더라”고 고무된 모습이었다.
김 대표는 “(문 전 대표가) 공식적으로 ‘나 어디 가겠다’며 다니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걸 물었더니 문 전 대표는 “김 대표와는 연대 책임, 아니 선거 결과에 관한 한 공동 운명체”라고 강조했다. 정치생명을 걸었지만 운명은 남이 정해주는 묘한 상황이다.
부산·서울=임장혁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